Sakura/Translation
[잡지] BUBKA 22년 8월호-사쿠라자카46 2기생 전원
2022. 7. 6. 17:17BUBKA 22년 8월호
#사쿠라자카46 #櫻坂46
(※ 의/오역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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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쿠라자카46 "2기생 전원집합" 스페셜
2기생 도큐멘트
「14명의 동료들」
이노우에 리나, 엔도 히카리, 오오조노 레이, 오오누마 아키호, 코우사카 마리노, 세키 유미코, 타케모토 유이
타무라 호노, 후지요시 카린, 마스모토 키라, 마츠다 리나, 모리타 히카루, 모리야 레나, 야마사키 텐
너라면 분명 갈 수 있어
나라면 닿을 수 있어
共生(공생)
사쿠라자카46 2기생 도큐멘트
동기로 있지만, 가입 시기가 다른 14명. 신2기생의 가입 초기에는 환경이 다른 것과 경험의 차이가 벽이 되어서 양쪽이 막혀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같은 그룹에서 시간을 보내며 다양한 일들을 공유해나가면서 그녀들은 조금씩 서로 어우러지고 마음이 편한 거리감을 쌓아 나갔다. 사쿠라자카46으로서 서로를 인정하고 요구하며 살아가는 그녀들의 궤적을 전달한다.
각자의 스타트
2018년 11월 29일, 사카미치 합동 오디션에 합격한 이노우에 리나, 세키 유미코, 타케모토 유이, 타무라 호노, 후지요시 카린, 마츠다 리나, 마츠다이라 리코(21년 3월 졸업), 모리타 히카루, 야마사키 텐이 케야키자카46의 2기생으로서 가입. 12월 4일에는 빠르게 『우타콘』에서 타케모토, 타무라, 마츠다가 1기생과 『안비바렌토』를 퍼포먼스 했다. 무대 뒤에서는 2기생이 눈물을 흘리면서 케야키자카46에 대한 사랑을 말했다고 한다. 그 후, 2기생은 선배들에게 도전하듯 활동을 계속해 나갔다.
타케모토 「덤벼들듯이(食らいつく)」라고 하기 보단, 「그 자리에 우리들이 존재해서는 안되는 거 같다」하고 스스로를 책망하는 마음이 들었다고 할까요. 팬 분들의 부정적인 목소리도 있었던 것 같은데, 그 부분에 신경을 쓰기 보다는 (케야키에 대한) 마음도 퍼포먼스도 표현도 다 못하는 제가, 선배님들의 완성된 퍼포먼스에 들어가는 게 죄송했어요. 선배님들이 한 곡 한 곡에 대해 혼을 깎으며 만들어 나가신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우리들이 따라가지 못해 매일 울었던 기억이 나요. 본격적으로 라이브에 참가하게 해주신 『3rd YEAR ANNIVERSARY LIVE』(19년 5월)쯤 부터, 「죄송함(申し訳なさ)」에서 마음이 변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타무라 당시에는, 음악 방송이 있을 때 마다 오디션이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어요. 매일 그저 필사적으로, 엄청 울었습니다. 팬 분들이 2기생의 존재를 받아들이시지 못하는 시기가 길었다는 건 우리들도 느끼고 있었어요. 우리들의 힘으로 어떻게든 좋은 방향으로 가져가기 위해서, 모두 다 같이 「힘내자」라고 격려했던 기억이 있어요.
마츠다 처음에 「2기생 몇 명만 음악 방송에 출연하도록 하겠습니다」라고 들었을 때는, 「이건 찬스다!」라며 죽도록 안무를 외웠어요. 의욕이 만만했지만, 합류하기 전에 선배님들이 레슨하시는 영상을 봤더니 「이런 대단한 분들과 춤추는 구나!」하며 눈물이 나왔어요. 불안함을 안고 있는 채로 선배님들과 합류했더니 『무대 위에 위치 스티커(バミリ)』라든지 『테이프 레코더(テレコ)』라든지 『좌측으로 부터 1.5(上手から1.5)』라고 들어도 의미를 몰라서, 선배님들과 충돌하면서 폐를 잔뜩 끼치며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하고 그저 사과드렸어요. 음악 방송이 있을 때마다 선발 발표가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지만, 2기생 동기끼리의 관계는 삐걱꺼리지 않고 좋은 라이벌이라는 느낌으로 절차탁마 했어요. 자기자신 이외의 멤버가 뽑히면 순수하게 축복하고, 그 후 분함을 느끼면서 「나도 열심히하자」라며 다짐했어요. 그런 일의 반복이었습니다.
모리타 오미타테회의 안무를 기억하기 위해 선배님들이 춤추고 계신 영상을 보여주셨는데, 그 영상을 보았을 때에 「엄청 대단해」하고 압도당했어요. 하지만, 실제로 1기생분들 사이에 들어가면 더 큰 차이를 느꼈습니다. 음악 방송의 본방송 전에는 2기생끼리 연습하고, 그 영상을 보면서 「여기는 이렇게 하는 게 좋을까」라며 이야기 했어요. 그래도 세세한 뉘앙스가 1기생 분들과는 달라서, 선배님들의 동영상이나 실제로 춤추는 모습을 보며 연구를 거듭해 나갔어요.
세키 그 시기의 저는 정말 춤을 못췄고, 거기에다 가입한 해에는 아직 상경할 수 없었기 때문에, 1기생 분들은 커녕 동기들에게도 뒤쳐져 있었어요. 그래서, 위기감이라고 말하기 보단 「모두 대단하네」라고 생각했어요. 『3rd YEAR ANNIVERSARY LIVE』에서는 간신히 필사적으로, 『케야키공화국2019』(19년 7월)에서는 라이브를 즐길 수 있게 되었어요.
이노우에 「아이돌이 좋아」라는 마음만 갖고, 스스로 뭘 하고 싶은지 모르는 채로 오디션을 보고 운 좋게 케야키자카46에 들어갈 수 있었어요. 그 후, 계속 꿈 속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어요. 그 시절의 일은 당연히 기억하지만, 제가 생각했던 걸 말로 표현할 수 없었어요.
야마사키 그 시절은 눈 앞의 일을 하는 것 만으로도 벅찼고, 무언가에 계속 쫓기는 것 같은 상태였어요. 생각한 뒤에 움직이는 여유가 없었어요. 「최연소니까」라고 나이를 변명삼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연령제한으로 나갈 수 없는 음악 방송이 있을 때는 분한 마음이 들었어요. 2기생 전원이 안무를 한 후에 누가 음악 방송에 나갈지 결정하는데, 안무를 할 때에 「텐은 시간제한이 있어서 나갈 수 없어」라는 말을 들었어요. 음악 방송에 나가서 선배님들과의 차이를 느끼는 아쉬움은 다음 일로 이어지지만, 애초에 찬스를 받을 수 없었어요. 열심히 해도 바뀌는 일이 아니라, 어쩔 수 없다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 미숙했고, 그 시절에는 「최연소라서 다행이다」라고 생각되는 일은 한가지도 없었어요.
후지요시 처음 들어갔을 때는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고 싶어」라는 감정보다는, 선배님들이 만드신 그룹을 무너뜨리고 싶지 않아서 열심히 하자고 생각했어요. 「나 자신을 드러내자」 그런 마음은 없었어요. 그게 바뀐 건 『10월의 풀에 뛰어들었다(10月のプールに飛び込んだ)』였습니다. 지금까지 했던 케야키자카46과 아무래도 다른 것이 될거라는 걸 깨닫고, 처음으로 「지금까지와 다른 걸 보여드리고 싶다」라는 생각으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20년 2월 16일, 사카미치 합동 오디션에 참가했던 엔도 히카리, 오오조노 레이, 오오누마 아키호, 코우사카 마리노, 마스모토 키라, 모리야 레나가 신2기생으로 가입했다. 6명은 19년 9월부터 사카미치 연수생으로 활동을 시작해, 10월부터 11월까지 도쿄, 나고야, 오사카 Zepp 투어를 감행하는 등, 갈고닦아왔다. 6명은 각각의 갈등을 겪고 있었다.
오오누마 「합격할 리가 없어」라고 생각하면서 오디션에 응모했기 때문에, 최종심사에 합격했을 때는 꿈을 꾸는 것만 같았어요. 하지만, 그룹에 소속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어떻게 살아가야 좋을까」라며 우울했습니다. 내가 이렇게나 사카미치 그룹에 들어가고 싶었구나, 하고 깨닫기도 했어요. 취업을 결정하는 시기이기도 했지만 연수생으로서 활동하는 걸 택했습니다. 다만 당시에는 자신감을 잃었기 때문에 어두운 상태로 지내고 있었어요.
코우사카 셀렉션에 떨어지고, 일단은 집으로 돌아갔었습니다. 그 즈음, 같은 오디션을 본 아이들이 활약했었죠. 모두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니까, 분함이 북받치게 되었습니다. 연수생으로서 다시 도전하는 길을 선택하고, 여름방학 기간 내내 레슨을 받으면서, 다른 연수생들과 서로 격려했습니다. 연수생 시절에 기른, 모든 일에 전력으로 열심히 노력하는 자세는 지금도 변하지 않았어요.
모리야 그룹에 들어가 활동하려는 마음이 만만했어서 소속이 정해지지 않았을 때는 「쇼크」라는 단어로는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낙심했습니다. 하지만, 역으로 스스로를 다시 직시하면서 「나에게는 부족한 점이 있구나」라고 생각할 수 있는 기간이 되었어요. 지금에 와서는 소중한 시간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연수생으로서의 활동이 시작되고 나서는 「덤벼나가겠다」라는 마음으로 레슨에 임했어요. 분했기 때문에 다음에는 절대로 같은 실수를 하지 않겠다는 마음 하나로, 모두와 열심히 땀을 흘리며 라이브의 리허설부터 큰 목소리로 노래하고, 어쨌든 무작정 했어요. 연수생 시절의 일은 계속 잊을 수 없을거라고 생각해요.
마스모토 팬 분들의 앞에 나갈 기회도 없고, 활동다운 활동도 없어서 앞이 보이지 않아 불안했지만 Zepp 투어가 결정되고 연수생 활동이 즐거워졌어요. 노래하고 춤추는 것이 아이돌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나, 아이돌이 되었구나!』라고 생각했어요.
엔도 그룹에 소속되는 것이 약속으로 정해진 건 아니라, 연수생이 통째로 없어져버릴 가능성도 있었지만 누구보다 강하게 「케야키자카46에 들어가고 싶어」라는 마음으로 레슨에 임해왔어요. 하지만, 제가 그룹에 필요한 존재인지는 제가 결정할 수 있는 건 아니라, 「현실은 냉정하구나」라고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 저의 마음을 잡아준 건 Zepp 투어에서 본 경치였어요. 그 장소에서 우리들을 기다려주시는 분들이 이렇게 계시는구나 라는 걸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오오조노 지금까지도 연수생 기간을 낭비하면 안된다고 생각해요. 그 시절에는 「어떤 그룹에도 소속되어있지 않아」 라는 소외감이 강하게 들었어요. 그래서, 「나만의 개성을 찾아야 해」 라는 고민을 계속했습니다. 케야키자카46에 들어가서도 「다른 사람과 같은 일을 해도 의미가 없어」 라는 걸 의식하게 되었어요. 그게 『케야키라고, 쓸 수 없어?』에서의 행동으로 이어졌다고 생각해요.
2기생과 신2기생은, 둘 다 사카미치 합동 오디션을 받고, 합격자를 위한 셀렉션 기간을 함께 보냈다. 그 기간에 친목을 다졌던 멤버도 있던 것 같다.
야먀사키 혼자서 신칸센을 타본 적이 없을 정도로 꼬맹이였기 때문에, 같은 오사카 출신의 호노가 도쿄까지 따라와 준 건 굉장히 도움이 됐어요. 언니같은 존재라서, 같은 그룹에 들어갈 수 있어 마음이 든든했습니다. 호노도 그렇고, 동기 모두가 동급생처럼 스스럼없이 대해주었기 때문에, 저도 마음이 가벼워졌어요.
마츠다 키라와 카린 3명이서 호텔에 지냈던 적이 있는데, 키라랑 수다가 멈추지 않았어요(웃음). 압도당해버렸어요. 후에 키라쨩에게 「마츠다씨, 엄청 떠들었죠」라는 말을 들었는데, 「이쪽이 할 말이야」라고 생각했어요(웃음).
마스모토 원래는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게 서툴고, 침묵이 무서워서 두뇌를 풀회전해 눈에 들어오는 모든 정보로부터 대화할 거리를 모아서 계속 말해버려요. 마츠다씨는 그 때부터 「존댓말 하지 않아도 괜찮아」라며 거리를 좁혀주어서, 말하기 쉬웠던 기억이 있어요. 셀렉션 때는 모두와 이야기 했어요. "오디션 하이(High)"가 되어서 「나는 무적이다」 그렇게 믿었습니다. 「나, 어쩌면 팔 힘이 굉장할지도 몰라」라면서, 이노우에씨와 팔씨름을 하고 압승했어요. 그럼, 모두를 쓰러뜨리자며 한 사람씩 승부를 걸어서 전승했던 추억이 있습니다. 제게 있어서, 팔씨름은 커뮤니케이션의 수단이었어요.
이노우에 키라쨩과는 고향이 가까워서, 도쿄에서 자주 함께 집으로 갔어요. 신칸센 역에서 키라쨩에게 「이노우에씨, 프리쿠라 찍으러 가요」라고 권유받았던 적도 있어요. 저는 그다지 신칸센을 타본 적이 없어서, 「30분 전에는 홈에 있어야 하지 않아?」라고 두근두근했지만, 키라쨩은 10분 정도 전에 「가요!」라며 캐리어를 굴리며 질주하곤 했어요. 세상에는 다양한 아이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웃음).
마스모토 이노우에씨와 (그룹에) 소속한 다음의 일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힘내자」하고 서로를 격려했어요. 셀렉션에서 떨어진 후, 서먹서먹해진다는 걸 알고있었지만 이노우에씨에게 「같이 집으로 돌아가요」라고 말을 걸었어요. 이노우에씨에게 「할 수 있어. 힘내」라고 강하게 응원했지만, 비참한 기분이 되어서 간식(사시이레)을 폭식하며 달래는 걸로 눈물을 참았어요. 그 때 이노우에씨가 「기다리고 있을테니까」라는 말로 앞을 향하게 될 수 있어서, 연수생에 도전하려고 결정했어요.
세키 오오조노쨩과 같은 규슈라서, 공항에서 서로 함께 도쿄까지 가서 레슨을 받고, 함께 귀가하곤 했어요. 하지만, 레이쨩이 신2기생으로 합류해도 말을 잘 하지 못하게 됐습니다. 저는 굉장히 낯을 가려서, (만나던) 기간이 비어버리면 제 안에서 관계가 리셋되고, 어떤 말을 해야 좋을지 모르게 되곤 해요.
타케모토 셀렉션 중 연기 레슨에서, 레이쨩과 자매역할을 했던 기억이 있어요.
오오조노 그 시절의 유이쨩은 진짜 아기같았어요(웃음). 엄청 눈이 이뻤던 게 인상적이었어요.
타케모토 다만, 합류했을 때는 「자매역」의 추억이 없었던 것처럼 대해버렸어요. 저 뿐만 아니라 앞서 들어온 9명은 낯을 가리고, 신2기생은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높아서 긴장하지 않는 타입이 많았다고 생각해요. 동기니까 존댓말 말고 편하게 인사하면 되는데, 제가 「안녕하세요!」, 「수고하셨습니다!」라고 인사했어요. 그렇게 대하면 신경쓰이게 되어버리잖아요. 지금도 후회돼요.
오오조노 「선배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어」라는 2기생과 「경험치가 달라서 우리들이 어떻게...」 하고 황송해하던 신2기생이 거리를 재고 있었어요. 오히려 1기생 분들 쪽이 이야기하기 쉬웠어요.
타케모토 지금은 내가 한 말에 웃어주는 사람은 레이쨩 밖에 없어요(웃음).
오오조노 제가 웃음이 많은 편이라, 모두 냉정해요(웃음).
경험의 차이
가입하자마자 코로나 사태로 인해 외출 자숙 기간에 들어가, 신2기생은 활동이 제한되어 버린다. 긴급 사태 선언이 끝나고, 첫 무관객 온라인 라이브 『KEYAKIZAKA46 Live Online, but with YOU!』(20년 7월 16일)의 리허설이 시작되었지만, 신2기생은 부분 참가로 2기생과의 사이를 깊게 만들지 못했다. 이 후에도, 사쿠라자카46의 활동이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까지 2기생과 신2기생이 커뮤니케이션 할 기회가 적었다고 한다.
이노우에 먼저 활동했던 우리들에 대해, 「많은 혜택을 받고 있었구나」라고 생각한 신2기생 아이도 있었을 거예요. 하지만, 우리들도 우리들끼리 즐겁기만 한 것은 아니였어요. 그런 마음을 안고서 서로 「어떻게 대해야 하지?」라고 당황해 했습니다. 다만, 그 시기에 케야키자카46으로 들어오는 걸 결정해준 신2기생에게는 진심으로 고마워요.
마츠다 솔직히 당황스러워서, 어떻게 대해야 좋을지 몰랐어요. 어떻게 생각했는지 모르지만, 누구와도 깊은 이야기를 하지 않고 2기생들 사이에서도 언급하기 어려운 화제가 되었습니다.
타케모토 대기실에서도 9명과 6명이 떨어져 앉아 있고, 섞이는 일이 없었어요. 케야키자카46의 라스트 라이브도 우리들은 전곡에 참여했지만 신2기생은 3곡만 참여했어서, 함께 리허설 하는 시간이 그다지 없었습니다. 사쿠라자카46이 되기 전까지는 존댓말만 하고, 어떤 아이인지 잘 모르는 상태가 계속되었던 느낌이에요. 지금은 「그건 뭐였지?」라고 생각할 정도로 벽이 없고, 대기실에서도 14명이 뒤죽박죽 앉아서 「14명은 동기」라는 관계가 되었지만, 그렇게 된 계기는 모르겠어요. 「사이 좋아져야만 한다」라든지 「가까워져야만 한다」같은 건 누구도 의식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야마사키 한결같은 상태로 있으려고 했기 때문에 주위에서 「텐쨩이 가장 빨리 익숙해졌네」라는 말을 자주 들었지만, 그래도 마음을 터놓을 때까지는 시간이 걸렸다고 생각해요. 신2기생이 가입하자마자 코로나의 영향으로 외출 자숙 기간에 들어가 함께 활동할 수 있는 시간을 공유하지 못했으니까요. 저는 같은 2기생 동료가 늘어난 게 기뻐서, 함께 열심히 해야겠다고 생각했지만 환경이 그렇게 만들어주지 않았어요. 나중에 들어온 6명은 강렬한 개성을 가진 아이들이 많아서, 빨리 친해지고 싶었어요.
엔도 앞서 가입한 2기생 멤버는 풋풋한 모습부터 비약하는 모습까지 보았기 때문에 「그 차이는 평생 메울 수 없을거야」라고 생각했고, 「만약 내가 처음부터 그룹에 들어갔으면 어땠을까」라는 상상도 했어요. 케야키자카46에 가입하는 것이 결정되자마자, 먼저 가입한 2기생과 어떻게 마주해야 좋을지 고민했습니다. 실제로 이야기한 적은 없었어서, 「2기생에는 칸사이 아이가 많은데, 키라쨩같은 아이가 9명 있으면 나는 계속할 수 있을까」고민한 적도 있습니다(웃음). 당시, 제게 있어서 「칸사이=키라쨩」이었으니까요. 하지만, 같은 칸사이 아이더라도 생각을 마음 속에 품은 채로, 상대를 이해하면서 다가와주는 아이가 많아서 안심했어요. 물론 키라쨩도 좋아해요(웃음). 처음에 들어왔던 9명의 2기생만 알 수 밖에 없는 힘든 시기도 있었다고 생각하고, 반대로, 우리들이 갈등을 안고 있던 시기를 9명은 몰라요. 서로 다가오기 어려운 부분이 있었기 때문에 「알아주고 싶어」, 「알아주었으면 해」라는 마음도 강하게 들었어요.
오오누마 먼저 소속된 2기생 모두한테 존댓말로 대했어요. 같은 오디션을 보았지만, 1년 늦게 그룹에 들어간 우리들에게는 선배이고, 존경하는 존재였으니까요. 하지만, 존댓말을 사용해서 거리감이 생겨버렸어요.
코우사카 1기생 분들 보다, 먼저 들어간 2기생 아이들과 「어떻게 이야기 해야 좋을까」하는 당황스러움이 있었습니다. 초창기즈음에는 키라쨩이 2기생에게 엄청나게 존댓말을 사용해서, 저도 따라해서 존댓말을 했어요. 거기서 거리감이 생겼지만, 타케모토 유이쨩이나 타무라 호노쨩이 「존댓말이 아니라도 완전 괜찮고, 이름 뒤에 『~씨(さん)』을 붙이지 않아도 돼」라고 말해줘서, 존댓말을 그만두게 되었어요.
마스모토 서로가 모르는 1년 간을 보내왔기 때문에, 이쪽도 계속 살펴보고, 저쪽도 동기로 대해야 할지 후배로 대해야 좋을지 고민했다고 생각해요. 저 스스로는 열심히 해왔지만, 처음 들어왔을 때는 9명과의 퍼포먼스 면에서 차이를 느꼈어요. 물리적인 온도차이를 느끼기도 했어요. 리허설에서는, 선배님들과 2기생은 몇 곡씩 춤추고 몸이 뜨거워지니까 냉방을 했는데, 3곡만 선보이는 신2기생은 계속 대기해서 추웠어요. 6명이서 몸을 맞대고 온기를 느끼면서 모두의 댄스를 보곤 했어요. 그 추위는 지금도 기억에 남아요.
모리야 그 추위로 「우리는 아직 아무것도 할 수 없어」라는 생각에 더 슬퍼졌어요. 가입 초기에는 서먹서먹했다고 할까, 2기생과 신2기생의 마음이 서로 멀어서 「어떻게 대해야 좋을까」하는 걸 고민했던 것 같아요. 함께 활동하는 일이 늘어나면서 마음을 터놓고, 지금은 그 벽이 없어졌다고 생각해요.
모리타 셀렉션 기간 중, 키라쨩에게 개그를 선보였던 적이 있어요. 그런 아이와 함께 활동할 수 있어서 「어떻게 될까?」하고 두근두근했습니다. 모두 「저 아이가 오는구나!」라고 이야기했을 정도였어요. 다만, 신2기생이 가입하자마자 코로나가 유행하고 활동이 제한되어서 좀처럼 서로 알 수 없게 됐어요. 케야키자카46 전원이서 노래하는 『누가 그 종을 울리는가?』의 안무나 레슨에서 드디어 함께 활동할 수 있게 됐어요.
『KEYAKIZAKA46 Live Online, but with YOU!』 리허설 기간부터, 9명의 2기생이 모여 서로 이야기하는 시간이 늘어났다고 한다. 사쿠라자카46으로의 개명이 기다리고 있으면서, 빛이 보이지 않는 터널 속에 있는 것 같은 감상에 빠진 일부 멤버는, 쓸쓸한 마음을 어디론가 쏟아내고 싶었다.
타케모토 타케모토 개명에 「찬성」 또는 「반대」라는 이야기라기 보단, 당시에는 정신적으로 불안한 멤버도 있어서, 그 밸런스가 무너지지 않도록 서로 지탱하고 있었습니다. 저도 혼자 있으면 불안한 마음이 엄습할 것만 같아서 모두와 모여있었습니다.
세키 「모여서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었나요?」라고 물으시면 기억이 나지 않지만, 저는 케야키자카46을 좋아했기 때문에, 혼자서 결정하지는 못하고 「앞으로 어떻게 되려나」하는 불안한 마음을 모두에게 물어보았습니다. 공감해주었으면 한다기 보다는, 의견을 말해줬으면 하는 타입이라, 타케모토나 이노우에의 이야기를 듣고 「그런 생각도 있구나」하고 참고했습니다.
마츠다 자숙 기간이 끝나고, 『KEYAKIZAKA46 Live Online, but with YOU!』 의 리허설이 시작되고 나서 서로 이야기하는 일이 늘어났던 기억이 있어요. 그다지 기억나진 않지만, 「더 열심히 해야지」 라는 이야기도 있었고, 실없는 이야기도 했던 것 같아요. 제가 직접 개명에 대한 의견을 말한 적은 없었던 것 같아요. 두 쪽의 의견 모두를 이해할 수 있어서, 스태프 분들께 맡길 수 밖에 없었다고 생각했어요.
야마사키 「외계인이 있다고 생각해?」같은 시시한 이야기부터 그룹에 대한 깊은 이야기까지, 매일 4,5명은 모여서 다양한 이야기를 했어요. 다만, 저는 떨떠름하진 않았고, 누구보다 긍정적이고 자신감이 있었습니다. 개명이라는 찬스를 받을 수 있어서 기뻤고 다음 그룹에서 어떻게 변할지 고민하는 편이 좋을거라고 생각했어요. 케야키자카46을 좋아했기 때문에, 아름답게 끝나고 다음 스테이지로 가고 싶었어서 모두에게 어떻게 생각하는지 많이 물어봤던 시기였어요.
모리타 그 시기는 후지요시와 이야기할 때가 많았던 것 같아요. 제 자신에 대한 불안함이라기 보단, 객관적으로 그룹을 보고 「이렇게 되지 않을까」하고, 앞 일에 대해 생각하면서 이야기했던 기억이 있어요. 사물을 부감(俯瞰)해버리는 습관이 있어요.
타무라 처음에는 개명이 분하고, 「더 케야키자카46로써 할 수 있는 일들이 있는데, 어째서 개명해야만 하는 걸까」하고 생각했어요. 다만, 저는 누군가에게 이야기해도 해결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 혼자서 껴안고 있었습니다.
10월 12일과 13일 『케야키자카46 LAST LIVE』를 무관객 온라인 라이브로 개최. 케야키자카46는 종장을 맞이하고, 사쿠라자카46를 선보였다. 3곡만 참가했던 신2기생의 가슴에는 「아슬아슬하게 합류했다」라는 기쁨과 「더 빨리 가입했더라면」하는 후회, 상반된 마음이 오고갔다.
엔도 가입하고 바로 개명이 되어버렸던 걸 간단하게 받아들일 수는 없었어요. 좀 더 케야키자카46의 곡을 부르고 싶었고, 이름 뿐만이 아니라 저라는 존재를 케야키자카46의 역사에 남기고 싶었어요.
오오누마 라이브 중, 대기하고 있던 시간이 굉장히 지루했어요. 6명이 계속 대기실에 있었는데, 기다리는 사이에 「우리들이 필요한걸까」하고 중얼거렸습니다. 그 시기에는 어떻게 열심히 해야 좋을지 몰랐어요.
모리야 라스트라이브 때는 케야키자카46의 곡을 더 부르고 싶었던 아쉬움이 있었어요. 케야키자카46로 활동을 거의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지금까지 「케야키자카46이었습니다」라고 이름 붙여도 괜찮을까, 하고 생각해버려요.
오오조노 먼저 들어간 2기생 9명이 반짝반짝 빛나는 것 처럼 보여서 「부러워」하는 마음도 어딘가에는 있었지만, 마지막에 사쿠라자카46로 『Nobody's falut』를 부르는 걸로 머리가 가득 찼어요. 제 안에서는 「다음」으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라스트라이브 중반, 2기생의 활동이 스크린에 투사되면서 9명은 서로 지지하듯 원 형태로 서서 손을 잡았다.
타케모토 누구부터 시작되었는지는 아직도 모르겠지만, 손이 잡혔으니까, 그럼 연결해보자 싶었어요. 맞추지 않은 애드리브 였어서 깜짝 놀랐어요.
타무라 원으로 섰을 때, 「2기생이 정말 좋아. 모두와 만날 수 있어서 다행이야」라고 생각했어요. 다만, 누가 손을 잡기 시작했는지는 모르겠어요(웃음). 영원한 수수께끼네요.
세키 저도 모르겠어요. 자연스럽게 손을 잡고 있었어요. 그 영상은 스마트폰에 남아 있어서, 지금 봐도 울어버려요(웃음).
마츠다 시작이 누구였는지 들은 것 같아요. 카린인가 텐인가, 제 반대 편에 있는 멤버라고 생각해요. 모두의 마음이 하나가 되어서 무의식적으로 손을 잡았는지도 몰라요.
후지요시 「카린부터 손을 잡았다」라고 말씀 많이 하시는데, 솔직히, 그 때는 기억나지 않아요. 저부터 이어진 기억도 없고, 돌아왔던 기억도 없어요(웃음).
야마사키 엄청나게 춤추고 숨을 거칠게 쉬면서 원으로 서서...순간 일어난 일이였어서 전혀 기억나지 않아요! 다만, 제가 손을 잡으려고 했다기 보다는, 거기에 손이 있었기 때문에 잡았던 것 같아요. 라스트라이브는 쓸슬함도 있으면서, 「다음 그룹에서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하는 두근두근함이 더 컸던 것 같아요.
타무라 케야키자카46 최후의 활동과, 사쿠라자카46의 1st싱글 제작이 중첩되었기 때문에 모두 힘들지 않았을까 싶어요. 「개명하기 싫어」라기 보단, 지금 스스로가 케야키자카46인지 사쿠라자카46인지, 그 전환이 어려워서 모두 고군분투하지 않았나 싶어요.
세키 저는 사쿠라자카46의 1st 싱글의 타이틀곡 멤버로 들어갈 수 없던 걸 안 상태에서의 라이브였어요. 그렇기 때문에, 「이 라이브에서 졸업해도 좋아」할 정도의 마음을 갖고 퍼포먼스 했어요.
모리타 케야키자카46의 마지막 날, 다음 날부터 시작하는 사쿠라자카46의 곡을 퍼포먼스 하는 건 너무 어려웠어요. 「어디에 마음을 둬야 좋을까」하는 당황스러움이 있었어요. 케야키자카46의 곡은 1곡씩 이를 꽉 깨물고 선보였는데, 저 스스로 「눈물을 흘리지 말아야지」라고 결정했어요. 『Nobody's falut』를 선보일 때 케야키자카46에서 흘린 눈물이 남아있으면, 보는 분들이 당황하실테니까요. 그 날은 강한 책임감을 갖고 스테이지에 섰습니다.
새로운 시대의 도래
라스트라이브의 최후에 선보인 『Nobody's falut』가 사쿠라자카46의 1st싱글 타이틀곡이었다. 센터에 선 것은 모리타. 그녀의 생동감 넘치는 퍼포먼스는 새 시대의 도래를 예감하게 했다.
사쿠라자카46는 1st 싱글에서 이례적인 「3명의 센터제도」를 도입. 커플링 곡의 『어째서 사랑을 해오지 않았을까?』의 센터는 후지요시, 『Buddies』의 센터는 야마사키가 발탁되었다. 3명의 센터는 활동을 통해 황홀함과 불안함을 공유하는 관계가 되었다.
모리타 『Nobody's falut』는 굉장히 재밌는 곡이라고 생각했어요. 현대를 반영한 메세지처럼 들리기도 하고, 우리들의 그룹에 대해 노래하고 있다고 파악할 수도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많은 해석을 알고 싶다고 생각했고 저 나름대로 1줄 1줄 의미를 고민했습니다. 『Nobody's falut』의 모든 것을 이해하고 싶었어요. 그런 마음으로 임했습니다.
야마사키 『Buddies』와 2nd 싱글의 『생각보다 외롭지않아(思ったよりも寂しくない)』는, 멤버나 팬으로부터 「엄청나게 텐쨩같은 곡이네」라는 말을 들었지만, 저 자신은 「이렇게 보여지는 구나」라고 주위의 이미지와 갭을 느꼈어요. 다만, 당시의 제가 「새로운 그룹에서 동료의식을 더 강하게 갖고 싶어」라는 심경이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퍼포먼스 할 수 있지 않았나 싶어요. 개명을 하고 나서는, 모두 힘을 합치고 싶어서 적극적으로 제가 멤버들에게 말을 걸려고 했어요. 『Buddies』는 동료의식을 높이는 1곡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후지요시 『나제코이(어째서 사랑을 해오지 않았을까?, なぜ 恋をして来なかったんだろう?)』의 MV촬영 중, 카토 히데진 감독님이 말씀해주신 것을 실천했는데, 그건 내면적인 거라, 안무가 달라진 건 아니지만 전혀 다른 퍼포먼스로 보였어요. 멈춰 서 있는 장면도 전혀 다른 방식으로 보였습니다. 그런 변화를 눈으로 볼 수 있는 게 기뻤어요. 그 때부터 계속 퍼포먼스는 물론이고 서 있기만 한 연출이라도 히데진 감독님의 말을 의식하려고 하고 있어요. 제가 계속 생각하고 있는 건 『나제코이』의 MV에 가득 담겨있어요.
야마사키 케야키자카46 때는 히카루와 카린과 그다지 이야기하지 않았지만, 제작 과정을 통하면서 의외의 일면이 보이는 경우가 많이 있어서 거리도 가까워졌어요. 지금은 3명이서 만나는 일도 많은데, 시시한 잡담만 잔뜩하고 있어요(웃음).
모리타 사쿠라자카46가 되고 나서 2명과 이야기 하는 일이 늘었어요. 다시 한 번 「이런 아이구나」라는 걸 알게 되어서 기뻤고, 2명이 제 마음을 알아주는 게 든든하면서 소중한 존재가 되었어요.
야마사키 모리타와는 4th 싱글(원문은 4th로 써있지만 3rd 싱글) 『유탄(流れ弾)』에서 처음으로 신메가 된 걸로 더욱 사이가 좋아졌어요. 지금은 프라이빗으로 가장 많이 만나는 멤버. 쉬거나, 일이 끝난 후 시간이 있으면 밥을 먹으러 가거나 하고, 그런 날이 계속 이어지던 시기도 있었어요. 매일같이 만나는데 매일 연락하고, 몇번인가 수족관도 가고, 크리스마스도 함께 보내서, 정말 사귀는 것 같은 레벨이에요(웃음). 2명이서 「이렇게 친해질 줄 몰랐어」라고 이야기 했습니다.
후지요시 모리타와 야마사키는, 사쿠라자카46가 되면서 함께 활동할 기회가 늘어서 대화가 늘었어요. 케야키자카46 때는 제대로 이야기를 하지 않았어서, 「재미있는 아이들이구나」정도만 알았어요. 최근에는 야마사키한테 흥미가 많아요. 신메인데 춤추는 방법도 다르고, 노래부르는 방법도 달라서요. 성격도 사고방식도 정반대로, 낙관적인 야마사키와 함께 있으면 즐거워요.
야마사키 정말 정반대라, 평생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니까 재미있어요. 히카루와 카린은 2명이서 깊은 이야기를 하는 이미지가 있지만 저는 카린과 깊은 이야기를 한 적은 없어요. 사고방식이 반대라는 걸 알고 있기 때문에 말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카린은, 생이별한 이란성 쌍둥이같은 이미지가 있어요. 공감하는 부분은 없지만 파장은 맞으니까 같이 있으면 편해요. 카린과의 신메가 잘 맞으니까, 둘이서 「다시 신메가 되고 싶어」라고 말했어요.
『Nobody's falut』에서는 신2기생으로부터 오오조노가 유일한 타이틀곡 멤버가 되었다. 환경에 익숙하지 않은 오오조노의 마음을 타무라가 안아주었다고. 한편, 타이틀곡 멤버에 들어가지 못한 이노우에와 세키는 둘이서 아픔을 나누었다.
오오조노 텐쨩과 히카루쨩, 유이쨩과는 이야기할 수 있었지만 2기생에 녹아들었다고는 말할 수 없었어요. MV촬영이 끝나고 다함께 초밥을 먹으러 갔을 때, 식탁이 1기생과 2기생으로 나누어져 있었어요. 「나는 어느 쪽도 아니야」라며 쭈뼛쭈뼛하고 있었는데 (코바야시) 유이씨가 「여기 비어있어」라고 말해주시고, 하부 (미즈호)씨가 에스코트 해주셔서 어째선지 1기생의 테이블에서 먹게 되었어요(웃음). 신2기생 중에서 저 혼자 타이틀곡에 들어간 의미를 고민했지만 답은 나오지 않았어요. 「열심히 해야만 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즈음, 호노쨩이 갑자기 저를 껴안고 「정말 열심히 하고있어」라고 말해줬어요. 그 순간의 기쁨은 확실히 기억하고 있어요.
타무라 안았었나?(웃음) 하지만, 말은 건 것은 기억하고 있어요. 레이쨩이 신경쓰여서, 계속 보고있었으니까요.
오오조노 『Nobody's falut』의 기간에 의식이 바뀌었어요. 그때까지는 「늦은 만큼 되찾아야지」라는 기분으로 활동했는데 「그것만으로는 부족해」라고 깨달았어요. 의욕이 있는 것만으로는 안되고, 마음을 드러내지 않으면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수동적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움직이게 됐어요.
코우사카 레이쨩이 타이틀곡 멤버가 된 걸로, 먼저 들어간 2기생 아이들과도 친해진 것처럼 보여서 저도 2기생 아이들과 더 거리를 좁혀야만 한다고 생각했어요.
이노우에 케야키자카46의 라스트라이브 전부터 『Nobody's falut』를 부르는 멤버는 제작에 들어갔어요. 하지만, 저는 그 멤버에 뽑히지 않아서 「나는 모두와 입장이 달라」라는 네거티브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런 기분을 멤버에게 잘 전달하지는 못했지만, 세키와는 「내가 해왔던 일이 정답이었을까」라든지 「그 때의 일을 후회하고 있어」라는 점까지 드러냈어요. 세키가 차분하게 이야기를 들어주어서, 저도 마음이 조금 편해졌어요.
세키 케야키자카46에서 릴리즈를 예정했던 9th싱글의 선발 멤버로 저와 이노우에가 3열 멤버로 뽑혔었어요. 하지만, 사쿠라자카46가 되고 타이틀곡 멤버로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이노우에와는 『어째서 사랑을 해오지 않았을까?(なぜ 恋をして来なかったんだろう?)』의 신메였기 때문에, 「같은 처지인 아이가 있구나」라고 생각했어요. 그 시기는 이노우에와 많이 이야기했어요. 라고 해야할까, 엄청 거칠었어요(웃음). 「열심히 하는 의미를 찾을 수 없어」라고 해야할까, 과장일지도 모르지만 「무엇을 위해 여기에 있는걸까?」하고 우울해졌기 때문에, 이노우에에게 기분을 토해냈어요. 그 때, 이노우에가 가까이 있지 않았더라면 무리였을지도 몰라요. 1st 싱글은 처음 있는 일이라 기분이 최악이었지만, 2nd 싱글은 「이런 거구나」하고 받아들일 수 있었어요. 제 안에서 『우연의 대답(偶然の答え)』이 소중한 곡이 된 것도 크다고 생각해요.
2nd 싱글에서도 타이틀곡 센터를 맡은 모리타는 「『BAN』은 굉장히 즐거웠어요」라고 회상했다. 그 이유는, 안무나 레코딩, MV촬영, 자켓 사진 촬영과 같은 「제작(과정)」이었다. 후지요시도 야마사키도 「제작」을 사랑하면서, 표현을 추구해 나갔다.
모리타 「이렇게 행복해도 되는걸까」 라고 생각할 정도로, 2nd 싱글은 제작이 즐거웠어요. 『BAN』의 MV를 찍어주신 카토 히데진 감독님은 멤버에게 기대시는 분이니까, 우리들도 전체에서 빈 부분을 맡을 수 있었어요. 히데진 감독님의 말을 금방 이해할 수 없었지만, 지금이라면 아는 것도 많아졌어요.
후지요시 감독님과 디렉터님, 카메라맨님 같은 어른들과 이야기하면 안심할 수 있었어요. 그 분들은 맞춰주신 거겠지만 마음이 편해졌어요. 라고 할까, 제가 혼자 있으니까 신경써서 말을 걸어 주십니다(웃음). 제작 스탭 분들은 소년같은 사람들의 모임이라 함께 놀아주세요. 활동 중에도 「제작」을 좋아합니다.
야마사키 2기생이 「제작」에 몰두할 수 있게 된 건 사쿠라자카46가 되면서, 모든 게 신선하게 느껴지니까 순수하게 즐거웠어요. 제작기간이 끝나고, 바로 「또 제작이 시작하려나」라고 말했기 때문에, 주위에서 「제작하는 걸 정말 좋아하는 2기생」이라고 불리게 되었어요(웃음).
개성이 싹트다
라이브나 음악 방송 이외의 장소에서 포텐셜을 발휘하는 멤버도 나타나게 되었다. 발군의 애교로 주위의 공기를 밝게 만드는 마츠다는, 사쿠라자카46 시대부터 외부 방송에 불릴 기회가 늘어났다. 19년 7월 출연한 『네프리그』에서의 진귀한 대답은 전설이 되었다.
20년 10월에 리뉴얼한 칸무리 방송 『거기 돌면, 사쿠라자카?』는 전력을 다하는 오오누마와 다른 차원의 언동을 하는 마스모토에 의회 그룹이 살아나게 되었다. 시청자가 웃어주는 것은 환영하는 두 사람이지만, 「이상한 아이」라는 이미지에 대한 딜레마를 안기도 했다.
마츠다 20년 여름 정도부터 외부 방송에 출연하는 것이 증가했어요. 외부 방송에 출연한 경험을 칸무리 방송인 『소코사쿠』에 갖고 돌아와서, 모두에게 「좀 더 이렇게 하는 편이 좋을 거 같아」라며 전하게 되었고, 저 자신도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되었어요. 외부 방송에서 「목소리가 작아」라고 어드바이스를 받았기 때문에. 이 외에도, 바깥 세계를 보고 깨달은 점이 많이 있고 그만큼 고민도 늘었어요. 그 때까지는 그저 즐기기만 했으니까, 제게 있어선 고민하게 된 것이 성장인 것 같아요. 『소코사쿠』에 대해 이야기하면, 마스모토와 오오누마는 엄청 개성이 강하잖아요. 개성이 없는 저는 항상 「부러워」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다른 멤버들도 멋진 개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각각의 개성을 더 발휘한다면 『소코사쿠』는 더 분위기가 올라갈 것 같아요.
오오누마 역시 버라이어티니까 봐주시는 분들이 더 웃으셨으면 좋겠고, 사쿠라자카46의 팬이 아니더라도 「엄청 재밌잖아!」라고 생각하셨으면 좋겠어요. 저는 웃게 만드는 스킬이 전혀 없어서 이상한 발언을 할 수 밖에 없지만, 츠지다씨와 사와베씨가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하이텐션으로 방송을 진행해주시는 덕분에, (분위기를) 흔들어주시면 바로 돌려드릴 수 있도록 앞으로 기운 자세로 방송에 임해요. 다만, 녹화에서는 항상 「이렇게 (분위기를) 흔드시면 이렇게 돌려주자」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멍한 얼굴이 되어버리니까 「오오누마, 들었어?」라는 이야기를 자주 들어요.
마스모토 저는 TV를 보지 않고 자라왔어서, 버라이어티에 약하다고 의식하고 있어요. 방송의 흐름을 파악하고 발언해야하는데, 대화를 듣지 않아서 「마스모토!」하고 (분위기를) 흔드셨을 때 엉뚱한 걸 이야기해버려요. 그게 「재밌어」라는 말을 듣고 있을 뿐이에요. 『모기에게 징역을 줬다』같은 이야기도 평소라면 「엥?」이라고 생각했을 것 같은데 모두가 웃어주니까 성립한 거예요. 온에어를 보면, 멍때리면서 기운빠진 얼굴을 하고 있는 경우가 많아서 집중해야겠다고 생각해요.
오오누마 「이렇게 하면 완전 재미있을 거야」라고 생각해도, 「팬 분들께 이상한 아이라고 생각되어져 버려」라며 주저해버리는 경우가 많이 있어요. 온라인 미팅&그리팅에서 팬 분들이 「정상적으로 떠드는 구나」하며 놀라셨을 때는 방송의 이미지가 크구나 싶었어요. 지금은 「태클 걸어주세요」라는 말을 잔뜩 하고 있지만, 그건 저를 이해해주시는 팬 분들이 존재하고 있으니까요. 같은 고민을 안고 있는 키라쨩과는 매일같이 밥을 먹으면서 「우리들은 피에로니까」라며 서로를 의지하고 있어요.
마스모토 「이상하네」라는 말을 듣다보면, 「확실히 남들과는 다를지도」라는 생각을 했지만 저는 지금까지 저를 평범하다고 생각하면서 살아왔으니까, 모두와 달라서 좋잖아요. 왜냐면 세계에 저와 오오누마씨와 마츠다씨 밖에 없다면, 소수파인 마츠다씨가 이상한 사람이 되잖아요. 저와 오오누마씨가 소수파인 인간이라고 생각해요.
모리야 오오누마 아키호와 셀렉션 기간에 함께 있는 일이 많았는데, 제가 우울해 하고 있으면 뭔가 말을 하지 않아도 옆에 있어 주었어요. 『Buddies』의 MV촬영 때에도 그랬어요. 원래라면 립을 해야 하는데, 프리로 춤추는 것에 열중해서 잊어버리고 말았어요. 후에 스태프 분의 말을 듣고 「나는 그런 일도 할 수 없었어」라며 낙심했는데, 곁에 아키호가 있어 줬어요.
오오누마 반대로, 저는 레나로 부터 기운을 받아요. 지난 번에도 제가 우울해 있으니까, 메세지를 담은 초콜렛을 가방 안에 넣어 줬어요.
야마사키 오오누마 선생님은 성실하기 때문에, 기대에 응하려고 노력하는 만큼, 뒤에서 고민하는 모습을 자주 봐요. 저는 오오누마 선생님을 「스승」이라고 부를 정도로 존경하고 있어요. 오오누마 선생님이 작사 작곡도 하고 영상도 제작한 『오오누마 송』이 정말 좋아서, 「날씨를 테마로 만들어줘」라고 부탁했더니 『갓파님』이라는 신곡을 만들어줘서 엄청 웃었어요. 오오누마 선생님의 재능은 바닥이 없어서, 아이돌의 새로운 길을 한정짓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지금 가장 주목해주셨으면 하는 크리에이터예요.
모리야 케야키자카46에서 사쿠라자카46로 바뀌면서, 1기생과 2기생이라는 기수는 있었지만, 「나도 처음부터 그룹을 만들어 가는 거야」라며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었어요. 다만, 『소코사쿠』에서는 저를 어떻게 드러내야 좋을지 몰라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2기생의 모습을 보며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어」라고 생각하게 되었어요. 팬 분들이 저를 봐주시는 장소가 『소코사쿠』정도 밖에 없어서 초초해지기 시작했어요
21년 6월 16일 ~ 18일에 개최된 3열 멤버에 의한 『사쿠라자카46 BACKS LIVE!!』는 『우리들이, 사쿠라자카46를, 강하게 만든다』라는 캐치 프레이즈가 표현하고 있듯 그룹을 강하게 만들기 위해 열렸다. 어떤 멤버에게는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수 있는 찬스」 였지만 어떤 멤버에게는 「우리들의 존재이유」 를 묻는 것 같아 마음이 동요하는 라이브였다.
코우사카 『BACKS LIVE!!』에서 제 전력을 드러낼 수 있었어요. 그 때까지는 진심으로 「열심히 했다」라고 생각할 만한 것이 없었는데, 『BACKS LIVE!!』는 「열심히 했다」고 납득할 수 있었어요. 안무를 외우는 게 서투른데 몇 곡씩 새로운 안무를 외워야 하니까, 오리지널 멤버에게 가르침을 받고, 집에 돌아와서 몇번이든 자율연습을 했어요. 특히 『BAN』은 코이케 (미나미)씨의 포지션이였기 때문에, 코이케씨 본인께 안무 가르침을 받았어요. 센터를 맡은 『Microscope』는 오리지널 멤버에 지지 않고 제 것으로 만드려고 노력했어요. 리허설을 포함해서 『BACKS LIVE!!』의 기간에 크게 성장할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경험할 수 있어서 좋았어요.
오오누마 기억해야 하는 곡이 엄청나게 많아서, 자는게 무서워 졌어요. 지금까지 했던 것 보다 가사를 정독하고 「이렇게 하면 곡의 메세지가 전달되지 않을까」하고 고심하면서 퍼포먼스를 했어요. 강한 곡일 때는, 부끄러움이 많은 제가 감당할 수 없어서, 강한 저를 어떻게든 끌어올리며 몇 번이나 「나 자신을 이긴다」 고 외치면서 마음을 만들어 나가며 라이브에 도전했어요. 머리 속은 후회만 잔뜩있지만 그 시점에서는 제가 가진 힘을 전부 냈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어요. 1개월 이상, 아침부터 밤까지 리허설을 했기 때문에 많은 이야기를 하다가 유이쨩과 사이가 좋아졌어요. 지금은 서로 함께 장난치거나 주 3회 밥을 먹으러 간다거나 가족끼리 사이가 좋아진다거나 해서, 서로 존댓말을 쓰던 시절이 거짓말 같아요.
타케모토 2nd 싱글에서 타이틀곡인 『BAN』의 멤버에 들어가지 못해 어떻게 노력해야 좋을지 모르던 때에 『BACKS LIVE!!』라는 「새롭게 도전할 수 있는 장소」를 설정할 수 있어서 구원 받았어요. 『BACKS LIVE!!』가 없었다면, 가슴을 펴고「사쿠라자카46의 멤버입니다」라고 말할 수 없는 기분이었을 거예요. 물론 갈등도 있었어요. 처음에는 『BACKS LIVE!!』라는 이름이 없고 「3열 멤버로 라이브를 합니다」라고만 들었기 때문에 찬스로 생각할 수도 있고 마이너스로 볼 수도 있었어요. 당장 마음을 정리하는 건 어려웠지만 저는 다른 멤버들에 비해서 마음을 전환하는 게 빨랐다고 생각해요. 그 때, 제 안에서 라이브에 대한 욕심이 엄청나게 쌓여있어서 『BACKS LIVE!!』를 해방시킬 수 있는 장소라고 생각한다면 깔끔할거라고 생각하고 임했더니 좋은 결과로 이어진 것 같아요.
이노우에 리허설 기간은 세키와 타케모토와 마츠다와 엄청나게 이야기해서, 4명의 유대감이 강해진 것 같아요. 『BACKS LIVE!!』는 상상했던 것 이상으로 묵직한 기분이 들었어요. 연습 중에 「내가 뭘 하고 있는 걸까」하고 타락했을 때도 3명과 이야기 하니까 마음이 편해졌어요. 『BACKS LIVE!!』에 대해 생각하는 게 일치했어서, 서로 지탱했어요.
마츠다 평소 라이브에서는 무대 감독님과 차분하게 이야기할 기회가 적지만 『BACKS LIVE!!』는 평소에 들을 수 없는 이야기도 해주셔서 공부할 점이 많았어요. 특히 MC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인식할 수 있었어요. 그동안 MC는 질문을 연결하기 위해 필사적이었고 「라이브로 올라간 텐션을 MC에서 냉랭하게 만들지 말자」라는 것까지는 생각하지 못했어요. 『BACKS LIVE!!』 무대 감독님께서 「MC를 좀 더 엔터테이먼트로 만들어야만 해」라고 하셔서 「바로 그거다!」라고 생각했어요. 팬 분들의 기억에 남는 MC가 될 수 있었으면 해요.
『BACKS LIVE!!』는 멤버가 입후보한 곡에서 각자 센터를 맡는 형태였다. 타케모토는 『BAN』, 세키는 『우연의 대답(偶然の答え)』, 마스모토는 『Buddies』, 모리야는 『블루문 키스(ブルームーンキス)』, 각자 「선택한 이유」 가 있다.
타케모토 『BAN』의 멤버에 선택되지 않아서 아쉬움을 해소하고 싶다는 의미로 센터에 입후보한 게 아니라 『BACKS LIVE!!』의 1회차도 2회차에도 「지금의 나」에게 가장 연결되는 곡을 선택했어요. 「이 곡이 좋아」라든지 「춤추고 싶다」는 마음을 일단 제외하고, 가사를 읽으면서 「지금의 나」에게 딱 맞았던 것이 『BAN』이었어요. 타이틀곡의 멤버에 들어가지 못했을 때, 「1st 싱글 기간에 나 자신과 마주해온 것이 헛된 일은 아니었어」라고 저 자신을 인정하지 않으면 정신적으로 지독해질 것 같았어요. 누가 어떤 말을 하든지, 나 자신만큼은 나를 믿어주고 싶고, 그래도 나의 길을 가고 싶어요. 그런 마음이 『BAN』에 연결되었습니다. 『BACKS LIVE!!』때는 이노우에, 세키, 마츠다를 의지했어요. 3명이 없었다면 스테이지에 설 수 없었을 거예요. 『BAN』을 3일 모두 다른 포지션에서 퍼포먼스 해야했어서, 자력으로 3패턴을 외워야만 해 패닉상태가 되었을 때, 3명이 저를 늪에서 빼내주었어요. 제가 구원받은 만큼, 누군가가 좌절했을 때 서포트를 해줄 수 있도록 주위를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되었어요.
세키 저는 『우연의 대답』을 불렀습니다. 막 릴리즈 되었을 때 『우연의 대답』 MV가 공개된 YouTube의 코멘트 창을 보니, 여러가지 고민이 담겨 있었어요. 그 고민을 읽다보니, 말로 표현하는게 어렵지만 「누구나 자유롭게 살아가면 좋을텐데, 어째서 고민하게 되는 그런 세상이 되어버렸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우연의 대답』을 선택했고, 「고민을 하는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편하게 살 수 있도록」하는 마음을 담아서 퍼포먼스 했어요. 라이브가 끝났을 때, 팬 분들이 칭찬해주신 적도 많았고 온라인 미트&그리트에서 「『우연의 대답』의 센터를 보고 만나러 왔어요」라고 말해주시는 분도 계셔서 이 곡을 선택하길 잘했다 싶어요.
마스모토 지금까지 라이브에서 볼 수 없었던 것도 볼 수 있는 1열이나 2열의 경치를 맛볼 수 있는 건 『BACKS LIVE!!』여서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사람들과 눈을 맞추며 춤추는 『Buddies』를 센터에서 퍼포먼스 하게 해주셨어요. 1년 가까이 지나도 「키라쨩의 『Buddies』 최고였어」라고 말씀해주시거나 『BACKS LIVE!!』를 계기로 팬이 된 분들도 계세요. 「드디어 라이브로 인정 받았다」 라는 기분이 들었어요. 모처럼 연습해왔으니까, 많은 분들이 보시면 좋잖아요. 그 여름은 열정적이었어요.
모리야 처음에 『BACKS LIVE!!』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같은 그룹인데 나눠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복잡한 생각도 있었어요. 하지만, 리허설을 거듭하니 불타오르고, 「나 자신의 좋은 점을 어떻게 드러낼까」하는 고민도 하게 되었어요. 그래서, 원래 좋아하는 곡이지만 「나만의 『블루문키스』를 할 수 있지 않으려나」싶어서 입후보 하게 되었습니다. 오리지널 센터인 히카루쨩에게 가까워지려고는 하지 않았어요. 히카루쨩은 히카루쨩의 색이 있고, 저는 저의 색으로 퍼포먼스를 하고 싶어서 TAKAHIRO 선생님과 댄서 분들과 상담하면서 방향성을 고민했습니다. 여태까지 이런 시행착오를 반복했던 적은 없었어요. 조금 부끄러운 점도 있지만, 『블루문키스』에서 바뀔 수 있었어요.
시간과 생각을 공유하다
7월 9일 ~ 11일에 개최된 히나타자카46과의 첫 합동 라이브 이벤트 『W-KEYAKI FES.2021』은 『케야키공화국』을 계승한 이벤트로, 사쿠라자카46는 첫날 단독 공연, 3일째 합동 공연을 하였다. 그 시기의 온라인 미트&그리트에서는 「케야키자카46의 그 곡을 했으면 좋겠다」라고 이야기하는 팬도 있어서 복잡한 생각을 하게 된 멤버도 있었다. 사쿠라자카46라는 그룹에 긍지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타무라 사쿠라자카46 전체에 있어서 첫 유관객 라이브였던 점이 제겐 컸어요. 케야키자카46 종반부터 팬 분들을 만날 수 없던 시기가 계속 이어져서, 솔직히, 그 문제로 멀어질 수 밖에 없던 팬 분들도 많이 계실 거라고 생각해 「지금의 우리들을 응원해주시는 분은 얼마나 계실까?」 하는 불안함을 가진 채로 활동했는데, 사쿠라자카46의 곡에 열광해주시는 팬 분들의 모습을 봤을 때는 「지금의 우리들을 응원해주시는 분들이 이렇게나 계시는 구나!」 하고 감사한 마음이 가득했고, 「사쿠라자카46를 좋아해주시는 분들이 더 늘었으면 좋겠다」 라고 생각했어요. 케야키자카46의 곡을 팬 분들이 사랑해주시는 건 물론 알고 있고, 그 마음을 부정할 마음은 없지만 『W-KEYAKI FES.2021』에서는 「사쿠라자카46로 경쟁할 수 있다」라는 걸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우리들의 퍼포먼스로 「『사쿠라자카46 좋구나』라는 생각을 가지셨으면 한다!」라는 생각으로 스테이지에 서 있었어요. 그만큼 사쿠라자카46라는 그룹에 긍지를 갖고 있습니다.
『W-KEYAKI FES.2021』의 뒷편에는 야마사키와 엔도가 벽을 부수며 서로만 아는 드라마가 일어났다고 한다.
엔도 『BACKS LIVE!!』를 함께 보낸 멤버와는 유대가 깊어졌지만, 그룹 전체로 생각했을 때 사쿠라에이트와 거리가 있는 건 좋지 않다고 생각했어요. 『W-KEYAKI FES.2021』를 마친 후, 야마사키 텐쨩과 얘기했어요. 원래라면 건들이지 않았으면 하는 부분까지 말했는데, 텐쨩이 저를 이해해주는 것 같아요. 지금은 서로 지탱할 수 있는 관계가 되었습니다. 그 시기부터 멤버들과 커뮤니케이션을 취할 수 있게 되고, 모두가 사쿠라자카46라는 그룹을 창조해나간다는 즐거움을 깨달았어요.
야마사키 히카리에 대해서는 계속 신경쓰고 있었어요. 먼저 가입한 2기생이 모르는 마음도 갖고 있을거고, 그녀들 나름 대로의 사고방식도 갖고 있겠지만 제가 그 마음이나 사고방식을 상상하는 건 한계가 있었어요. 가능하면 빨리 진짜 동기로 활동하고 싶었으면 했고, 이걸 어떻게 하면 좋을지 고민했기 때문에, 히카리가 「최근이 되고 나서야 나를 2기생이라고 말할 수 있게 되었어」 라고 말해준 게 굉장히 기뻤어요. 히카리가 즐겁게 활동해주는 게 어찌되었든 기뻐요. 저 스스로는, 제가 누군가에게 고민을 상담하는 일은 없지만 사쿠라자카46가 되고 나서 멤버 앞에서 울 수 있게 되었어요. 원래는 마음을 오픈할 수 있는 타입이 아니지만 동료의식을 높이기 위해서는 저부터 마음을 열어야 상대방도 그렇게 해준다고 생각해서, 후회해도 괜찮으니까 저 스스로를 드러내게 되었어요. 그게 자연스러워져서, 멤버 앞에서도 울고 싶을 때 울 수 있게 되었어요. 바로 다가와주는 모두에게 고맙고, 그런 때에는 「최연소라서 다행이다」라고 생각해요.
그 무렵에는 2기생과 신2기생 사이의 응어리가 없어지면서, 이전에는 거리를 두고 앉았던 대기실에서도 2기생과 신2기생이 뒤섞여서 앉게 되었다고 한다. 마침내 14명이 어우러져서 하나가 되었다.
오오조노 일상의 사소한 일이 된 것 같아요. 이동하는 차에서도, 초기에는 먼저 들어간 2기생의 옆에 앉는 일이 없었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고, 정말 「어느 사이에」 사양하는 일이 없어졌어요.
이노우에 확실히 「여기서부터」라는 구분은 없지만, 역시 사쿠라자카46가 되고 2기생도 신2기생도 1부터 시작한 게 컸다고 생각해요. 케야키자카46 때에는 함께 제작한 적이 없었으니까요. 재데뷔라는 건 찬스이면서도 동시에 위기이기도 해서, 모두 악착같이 했다고 생각해요.
모리타 사쿠라자카46으로 개명해서 1부터 모두와 걸어나간다는 감상은, 지금 여기에 있는 사람만이 맛볼 수 있다고 해야할까요. 그 감상을 공유하는 게 큰 것 같아요. 키라쨩과는 자주 프레젠트 교환을 해요(웃음). 기념일과는 관계없이, 키라쨩이 「아까 편의점에 갔으니까」라면서 좋아하는 과자를 주거나, 촬영이 끝났을 때 「수고했-어!」라며 과자를 주거나, 그런 사소한 상냥함이 기쁘고 저도 「답례」를 해요. 최근에는 키라쨩이 좋아하는 파충류 굿즈를 선물해요.
세키 핵심 인물은 역시 키라쨩이지 않나요?(웃음) 키라쨩은 우리들 뿐만이 아니라, 선배에게도 적극적으로 말을 거는 아이라서 사쿠라자카46 전체가 하나가 될 수 있게 만들어주었다고 생각해요.
마스모토 제가 핵심 인물이라니 말도 안돼요. 핵심 인물은 『진범』이라는 거죠? 그렇다면, 마츠다씨가 『진범』이라고 생각해요. 마츠다씨는 「성 떼고 불러도 괜찮아? 오늘부터 키라쨩이라고 부를게」라며 거리를 좁히려고 해줬어요. 한사람 한사람에게 그렇게 말해줬어요. 그리고 신2기생은 존댓말을 그만두게 됐어요. 하지만, 저는 존댓말이 계속 사라지지 않아요. 신2기생에게도 「모리야씨」, 「히카리씨」라고 해요. 벽이 있다고 하기 보단, 처음부터 존댓말이라 바꿀 수 없는 것 뿐이에요. 「텐씨」도 별명이라고 생각해요.
야마사키 라이브를 거듭할 수록 벽이 없어져요. 지금은 떨어져 앉아 있던 적도 잊고, 「그런 때가 있었지」라며 웃어 넘길 정도예요. 9명의 시대에 비하면, 14명의 2기생이 압도적으로 강해졌다고 생각해요.
오오누마 앞서 가입한 2기생을 가까이서 보면, 정말 한사람 한사람이 대단하다고 생각되면서 점점 좋아져요. 그렇게 되면 제가 스스로 말을 걸고 싶어지고 곤란한 일이 있으면 도와주고 싶고, 더 친해지고 싶다고 생각하게 돼요. 이건 사랑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코우사카 처음으로 들어간 2기생은 서로를 지탱하면서, 하나가 되어 있었다고 생각해요. 한편 신2기생은 너무 개성이 강해서, 뭉치지 않았어요(웃음). 2기생과 신2기생은 컬러가 달랐어요. 하지만, 지금은 14명이 친해져서 대기실에서는 서로 장난치고 라이브가 되면 결속합니다. 정말 좋은 관계가 된 것 같아요.
타케모토 「가족같아」라는 말을 듣는 1기생과의 관계와는 조금 달라요. 2기생은 「가족」도 「친구」도 아니지만, 동료로써는 최고의 멤버라고 생각해요. 엄청나게 간섭하지도 않고, 평소에는 뭘 하는지 몰라요. 오랜만에 만나면 「살아 있었어?」라고 확인할 정도로요(웃음). 그런 관계라 처음에 만난 날부터 지금까지 분위기가 전혀 변하지 않았어요. 앞으로도 저는 이대로의 관계가 좋다고 생각해요.
마스모토 서쪽에 사는 사람이 많아서 그런지, 고민을 상담하면 「좋아좋아」 라고 위로하는 게 아니라, 마츠다씨를 필두로 「괜찮아, 괜찮아」 라고 밝게 격려해줘요. 그래서, 모두 앞을 향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역시 핵심 인물은 마츠다씨고, 아무리 피곤해도 부정적인 말을 하지 않아요. 멋진 부캡틴이라고 생각해요.
마츠다는 21년 4월에 부캡틴으로 취임. 캡틴 스가이 유우카와 보조를 맞추면서 사쿠라자카46를 빛이 비치는 쪽으로 비춘다.
마츠다 부캡틴의 명확한 역할로는, 라이브 전에 원진을 짰을 때 한마디를 맡겨 주십니다. 「확실히 대답을 하자」라는 일상적인 것 부터 「더 좋은 퍼포먼스를 전하고 싶다」같은 라이브 이야기까지, 저는 신경쓰이는 점을 사양하지 않고 말하는 타입이라, 타이밍이 있으면 생각하고 있던 걸 전하려고 해요. 처음에는 주저했지만, 말하지 않으면 어정쩡하기 때문에 한 걸음 내딛었어요. 2기생에 대해서는 제가 정리해야겠다는 마음은 갖고 있었지만, 모두 성실하기 때문에 제가 한마디 더하기만 해도 충분하다고 생각해요. 그런 저를 의지해주는 멤버가 있다는 것이 기뻐요.
터닝포인트
9월 11일 ~ 10월 31일에는 첫 전국투어 『사쿠라자카46 1st TOUR 2021』이 열렸다. 휴양을 위해 활동을 멈추었던 코바야시 유이의 포지션에 들어간 오오조노와 이노우에는, 새로운 풍경을 보면서 의식을 바꾸는 것에 성공했다. 거기에, 야마자키, 엔도, 마스모토도 각각의 이유로 터닝포인트를 맞이하게 된다.
오오조노 유이씨의 포지션에 들어갔던 경험이 컸어요. 「유이씨를 보러 와주신 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시려나」라고 하는 불안함이나 (와타나베) 리사씨와 신메에서 퍼포먼스를 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한 감사함, 여러가지 기분을 안은 채로 「유이씨가 『백 멤버(대타멤버)에 들어가줬으면 좋겠어』라고 말씀해주신 이상 열심히 해야만 해」라고 생각하면서 퍼포먼스 했습니다.
이노우에 『BACKS LIVE!!』에서 제가 하고 있는 일이 정답이 맞는지 모르게 되어서, 「나는 『빈 껍데기』일지도 몰라」라고 생각하게 되었어요. 「뭘 하고 있는 거야」라며 저를 탓하고 있을 때 투어가 시작했어요. 유이씨의 포지션에서 『마지막 지하철을 타고(最終の地下鉄に乗って)』를 퍼포먼스 하게 되었는데, 이 곡이 제게 「힘내!」 라고 말해주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러면서, 「나 따위를 누가 응원하고 있는 걸까」라며 네거티브한 마음을 갖고 있었는데, 오랜만에 고향에 있는 팬 분들을 만날 수 있어서 「이렇게나 나를 응원해주시는 분들이 계시는 구나」라는 걸 새삼 실감하고 모티베이션이 되었어요.
야마사키 『유탄』을 제작하면서부터 춤추는 걸 좋아하게 되었어요. 그 때까지는 열심히 안무를 외우고, 그걸 어떻게 갈고 닦을지 고민하느랴, 안무를 외우는 시점에서는 즐길 수 없었습니다. 그래도 『유탄』 때는 항상 춤추고 싶다고 생각할 정도로 제 안에서 하나의 산을 넘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그리고 투어에서는 공연마다 퍼포먼스를 모색하면서, 그 때마다 발견하는 것이 있었어요.라이브를 즐기는 방법도 바뀌었어요. 주위에서 「바뀌었네」 라는 말을 듣는 경우도 많아졌어요. 다른 멤버들로부터 퍼포먼스를 흡수한 적도 많아요. 어쨌든 멤버들을 많이 보고, 「좋다」 라고 생각하면 많이 칭찬해요(웃음). 동기로써 서로 자극하면서, 저도 성장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엔도 라이브가 끝나고 「나는 그룹에 있어서 필요한 존재가 되지 못한 것 같아」라면서 울었더니, 처음부터 들어왔던 2기생 아이들이 달려오면서 「그렇지 않아!」라며 격려해주면서 웃게 해주는 아이도 있어서, 「여기가 내가 있을 곳이구나」라는 생각과 함께 마음이 따뜻해졌어요.
마스모토 일로 인해서 고민한다거나 우울해지는 일은 없지만, 모리야 (아카네)씨와의 이별로 인해 우울해져 있었어요. 투어 기간 동안, 타무라씨가 「생일에 받았던 케이크를 다 못 먹었는데 먹을래?」라며 갖다줬어요. 모처럼이니까 「아카네씨가 없어져서 쓸쓸해」라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케야키자카46 시대, 타무라씨도 소중한 선배와의 이별로 괴로운 마음을 경험했기 때문에 자신이 겪었던 일을 얘기해 줬어요. 하지만 역시 투어에서 원진을 짰더니 괴로워져서, 그 장소를 슬쩍 벗어나려고 했더니 타무라씨가 쫓아와서 저를 안아줬어요. 만약 외로워지면 타무라씨에게 기대서 울면 괜찮다고 생각했더니, 마음이 편해졌어요.
3rd 싱글 타이틀곡 『유탄』의 센터로 선택된 것은, 오오조노와 마스모토의 마음을 풀어준 타무라였다. 부드럽게 웃는 얼굴을 지녔다는 이미지가 강한 타무라지만, 『유탄』에서는 쏘아보는 눈빛을 하며 엽기적으로 춤을 추었다. 21년 섣달 그믐날, 『NHK 홍백가합전』에 출연한 사쿠라자카46은 『유탄』을 선보여 강렬한 임팩트를 남겼다.
타무라 그룹에 있어서는 터닝포인트가 되는 곡이고 책임감이 있어야 하는 포지션에 세워주셔서 귀중한 경험을 했습니다. 이케다 카즈마 감독님과 커뮤니테이션을 하면서 MV를 제작했는데, 『유탄』의 퍼포먼스를 포착해주셨기 때문에, 감독님께는 감사해요. 라이브나 음악 방송에서 선보였지만, 같은 『유탄』은 하나 밖에 없어서 팬 분들도 「그 때의 『유탄』이 좋았어」 라고 말해주신 적이 많아요. 개인적으로는 와타나베 리사씨의 졸업 콘서트에서 퍼포먼스 한 『유탄』을 좋아해요. 여태까지 했던 것 중에 가장 네추럴하게 표현할 수 있었어요.
모리타 타무라는 혼자서 껴안고 있는 타입이지만, 개인적으로는 괴로운듯한 얼굴을 보는 건 좋아하지 않아서, 그렇게 되지 않도록 평소에 옆에 있어줬어요. 말을 걸지 않더라도 마음을 알아 줄 수 있으니까, 타무라를 지탱해주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오오조노 작년 『홍백가합전』의 전날이었던 것 같은데, 밤 늦게 호노쨩에게 이야기를 들었어요. 호노쨩이 짐작하고 저에게 말을 걸어줬는데, 『홍백』의 가창곡이 『유탄』이었으니까 센터인 호노쨩이 빨리 잠에 들길 바라서 「괜찮아」라고 한번은 거절했지만 「전부 보여줘」라고 말해줬어요. 저도 호노쨩도 적극적으로 자기의 이야기를 하지 않아서 이해할 수 있는 걸 하나씩 하나씩 고르고 골라, 어떤 문제이든지 다양하게 이야기 했어요.
타무라 그게 『홍백』 때였나? 레이쨩과 이야기한 건 기억하고 있어요. 저도 남들에게 말할 수 없는 마음을 굉장히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그런 사람을 내버려 둘 수가 없어요. 만약에 이야기 하고 싶다고 생각하면 제가 어드바이스는 하지 못하더라도 「이해」하고 싶다고 생각해요. 레이쨩에게만 한정되지 않고, 멤버 누구든 외톨이로 만들고 싶지 않으니까, 용기를 내서 「만약 무슨 일이 있다면 말해줘」라고 전하고 있어요. 각자의 고민은 다르겠지만 이해하려는 마음이 있으면 그룹이 잘 굴러가지 않을까 싶어요.
3rd 싱글 수록에 코바야시와 후지요시와 엔도에 의한 유닛곡 『자메이카 맥주(ジャマイカビール)』는 스타일리시한 곡이었지만, 코바야시가 휴업중이었기 때문에 구입자 전달 특전인 온라인 미니라이브에서는 선보이지 않았다. 지난 12월 9일, 10일에 개최되었던 『사쿠라자카46 1st YEAR ANNIVERSARY LIVE』에서 코바야시가 서프라이브로 복귀하여, 드디어 3명이서 『자메이카 맥주』를 퍼포먼스. 엔도에게 있어서, 여기가 스타트 라인이 되었다.
엔도 『자메이카 맥주』의 유닛에 대해 들었을 때는 찬스라고 생각했어요. 제가 있는 것에 위화감을 느끼시는 팬 분들도 계시겠지만, 유이씨와 카린쨩의 좋은 점을 흡수해나가면서 3열 끝에 있어도 봐주시는 분들을 제압하는 퍼포먼스를 할 수 있다는 걸 증명하고 싶었어요. 유이씨의 안무 외우는 속도와 경쟁했어요. 「잊는 것도 빠르니까(웃음)」이라며 농담을 해주셨지만, 6년동안 하신 노력의 결정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카린쨩은 곡을 이해하고 표현하는 힘이 있는 아이라고 다시 한 번 생각했어요. 영상을 멈추었을 때 알게되었는데, 3명은 소리를 다루는 방법이 비슷해서 제멋대로 궁합이 좋다고 생각했어요(웃음). 『1st YEAR ANNIVERSARY LIVE』에서 『자메이카 맥주』를 처음 선보이게 되었는데 「여기서부터 나는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하고 설레었습니다. 팬 분들께서 「엔도 히카리는 여기서 더 멀리 갈 수 있다」고 생각하실 수 있는 퍼포먼스를 하고 싶어요. 제게 있어서 『자메이카 맥주』는 스타트라인이 되었어요. 『자메이카 맥주』 유닛이 몇년이든 이어졌으면 좋겠습니다.
후지요시는 3rd 싱글에서 사쿠라에이트에 들어가지 못했던 것을 후회했지만, 그 이유는 참가할 수 없었던 MV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후지요시에게 있어서 MV는 많은 새로운 감정을 만날 수 있는 장소였다. 22년 1월 8일, 9일에 개최된 『3rd Single BACKS LIVE!!』에 출연한 후지요시는 자신이 참여하지 않은 『Dead end』를 센터에서 선보였다. 오리지널 센터인 모리타와는 다른 표현으로 압권인 퍼포먼스를 보여주었다. 마지막의 MC에서 후지요시는 「여러분과 음악을 함께 공유하면서 먼 곳까지 걸어가면 좋겠습니다」라고 말했다.
후지요시 모리타가 생각하는 『Dead end』와 제가 생각한 『Dead end』는 달랐어요. 그래서, 모리타가 센터인 영상은 보지 않고 댄서 분께서 춤추는 영상을 보고, 라이브에 임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마지막 말은 계속 생각하고 있던 거고, 사쿠라자카46으로서 팬들과 더 많은 경치를 보고 싶고, 곡을 통해서 마음을 공유하고 싶어요. 그게 제게 있어선 기쁨이니까요.
오오조노 제 멋대로 느낄 뿐이지도 모르지만, 보고있는 경치가 변한 카린쨩이 부드러워진 것 같아 접근하기 쉬워졌어요.
후지요시 최근, 오오조노에게 츳코미 걸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해요(웃음)
4th 싱글 타이틀곡 『오월비여(五月雨よ)』의 센터로 선택된 건 야마사키였다. 이 작품으로 그룹에서 졸업하는 1기생인 와타나베 리사는, 야마사키에게 있어선 언니와도 같은 존재. 야마사키는 「자랑스러운 여동생, 이라고 말할 수 있도록」 스스로의 표현력에 대한 날개를 펼쳤다.
4th 싱글에서는 이노우에와 세키가 타이틀곡의 멤버로 들어갔다. 그리고 모리야가 사쿠라에이트에 들어가는 걸 달성했다.
야마사키 선배님이 「텐쨩이 생각한 대로 해도 괜찮아」라고 자유롭게 해주셔서, 응석부릴 수 있는 점은 응석 부리자는 스탠스로 전환했어요. 『오월비여』의 MV는 혼자인 씬이 많아서 촬영 중에 허전해지기도 했는데, 사비에서 멤버 전원이 일렬로 춤추는 부분에서 「겨우 만났다!」라는 기분이 들었어요. 그동안 했던 타이틀곡과는 테이스트가 다른만큼 노래에 더 힘을 준 곡이었어요. 「새로운 도전」에 대한 설렘과 불안함이 한가득 있었는데, 그 불안함은 신메인 히카루와 호노쨩이 해소해 주었어요. 호노가 「괜찮아」, 「잘했어」라고 칭찬해주고 히카루와는 밥을 먹으면서 다양한 이야기를 하면서, 긍정적일 수 있게 되었어요. 주위 사람들에게 은혜를 많이 입었습니다.
모리타 역시 텐쨩이 센터인 곡은 동료를 의식해야 하거나 멤버와 닿는다거나, 눈을 맞추는 따뜻한 순간들이 많아요. 텐쨩 스스로도 매우 즐겁고 쭉쭉 자유롭게 퍼포먼스 해서 안심했어요. 그래도 불안해졌을 때는 힘이 되고 싶은 마음이 있어서 텐쨩과 많은 이야기를 했어요.
이노우에 저는 타이틀곡에 들어갔다가, 들어가지 않는 걸 반복하고 있는 멤버인데 들어가게 되면 역시 기쁘고 들어가지 못하면 「나는 무엇을 해왔던 걸까」하고 스스로를 탓하는 것 같은 기분이 싹터버리곤 해요. 하지만 최근에는 타이틀곡에 들어가지 않아도, 틀린 일을 해왔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게 되었어요. 『BAN』의 멤버에 들어갔을 때는 솔직히 기뻤지만 『오월비여』의 멤버에 들어갔을 때는 「기쁘다」는 감정보다는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하는 걸 고민하게 됐어요. 그냥 노력하는 건 의미가 없다고 해야할까, 다들 「과정이 중요하다」라고 말하지만 슬슬 눈에 보이는 결과를 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세키 솔직히, 3번째 싱글에서 「나는 더 이상 타이틀곡을 부르지 못할 것 같아」라고 생각했지만, 4번째 타이틀곡 멤버 발표에서 제 이름이 불렸을 때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기뻤어요. 그 날은 계속 두근두근거렸어요(웃음). 음악 방송에서 곡을 선보일 기회도 받고, 미그리에서는 「『오월비여』를 보고 왔어요」라고 말해주시는 팬 분들도 많았어요. 이런 경험은 처음이었고 그룹에 도움이 되었다는 실감이 났어요.
모리야 아이돌로 활동하고 있는 이상, 진화를 계속하고 싶고 위를 목표로 열심히 하고 싶은 마음이 있어서 4th 싱글에서 목표 중 하나인 사쿠라에이트에 들어갈 수 있어 솔직히 기뻤어요. 다른 2기생들 처럼 저도 「제작」을 좋아하니까 모든 악곡을 참여할 수 있다는 게 가장 크게 다가왔어요. MV 감독님이나 TAKAHIRO 선생님이 설명을 해주시면서 가사의 의미를 해석하고 스스로 표현을 고민했어요. 제가 1부터 곡을 만들어 나가는 건, 역시 즐거웠어요. 『오월비여』는 사랑하는 사람을 생각하면서 노래했는데, 멤버에 대해 생각하면서 노래했습니다. 유닛곡인 『제복의 인어(制服の人魚)』(타케모토, 모리타, 모리야, 야마사키)는 모두 춤을 잘 추지만 그 중에서도 유이쨩의 유연한 움직임이 좋아서, 연습 중에도 유이쨩이 몸을 사용하는 걸 보고 참고했어요. 지금은 팬 분들께서 「귀여워」라고 말씀해주시는 경우가 많은데, 「그거 뿐만이 아니에요」라는 걸 보여드리고 싶어요.
모리야는 『라빗토!』의 시즌 레귤러로서 21년 8월부터 12월까지 매주 출연. 아이돌다운 행동으로 스튜디오에 상쾌한 바람을 불어넣었다. 시즌 레귤러가 종료되서도 『라빗토!』의 로케 기획에는 불리는 경우가 많아, 「사랑받는 능력」을 발휘하고 있다. 『라빗토!』에서의 경험이 『소코사쿠』에도 반영되어, 모리야는 훌륭하게 자신의 개성을 확립했다.
모리야 그 때까지 외부 방송에 출연할 기회가 없었기 때문에 『라빗토!』의 시즌 레귤러로 뽑혔을 때는 깜짝 놀랐어요. 게다가 생방송이라 이상한 말은 할 수 없잖아요(웃음). 처음에는 「괜찮으려나」하고 불안함이 한가득 있었는데, 개그맨 분들이 제 발언을 팔로우 해주셔서 웃음으로 바꿔주시니까 점점 안심하게 됐어요. 이전에는 「말해도 괜찮으려나?」하고 고민하면서 말을 하지 않은 적도 있지만,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제 모습을 발언할 수 있게 되었어요. 『라빗토!』에게는 정말 감사하고 있어요. 덕분에 『소코사쿠』에서도 바뀔 수 있게 되었습니다. 「좋아하는 열량 프레젠테이션 쇼!」 같이 저 혼자서 말하는 기획은, 이전이었다면 긴장해서 잘 하지 못했겠지만 지금은 저를 드러낼 수 있게 되었어요. 아직 잘하지는 못하지만, 제 나름대로 머리를 풀회전 하면서 노력하고 있으니, 앞으로도 지켜봐 주세요.
사쿠라자카46와 케야키자카46
5월 20일, 21일 「와타나베 리사 졸업 콘서트」가 열렸다. 중반에는, 1기생이 『두사람 계절(二人セゾン)』을 시작으로 케야키자카46의 곡을 선보였다. 『1st YEAR ANNIVERSARY LIVE』에서 유닛곡을 선보였지만, 사쿠라자카46으로 개명하면서 가만히 두었던 명곡들을 퍼포먼스 했다. 하지만, 시계 바늘은 다시 돌아오지 않았고, 사쿠라자카46 2기생 14명은 스테이지에서 빛을 발했다. 케야키자카46과는 다른 사쿠라자카46를 확립해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모리타 졸업 콘서트는 리사씨의 역사를 되짚어보는 구성으로, 팬 분들께서는 여러 생각이 들면서 보고 계시겠지라고 생각하면, 저도 쓸쓸한 기분이 되었어요. 케야키자카46에서 사쿠라자카46로 돌아오는 첫번째 곡이 저와 리사씨의 추억이 담긴 『블루문키스』였어요. 처음에는 함께 추는 씬이 없었는데 리사씨가 「히카루쨩과 춤추고 싶어」라며 부탁하셔서, 제 염원이 이루어졌습니다. 『블루문키스』같은 곡이 있다는 것도 사쿠라자카46의 매력이라고 생각해요. 다양한 종류의 곡이 있어서, 그 근원에는 「~다움」이 있다는 게 사쿠라자카46입니다.
마스모토 리사씨의 희망대로 밝은 곡으로 세트리스트를 짜서, 졸업 콘서트라는 걸 잊을 정도로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어요.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을 즐거운 기억으로 마칠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모리야씨가 객석에 계신 걸 찾을 수 없었어요. 라이브 끝나고 제 사진을 보냈더니, 모리야씨가 「이 얼굴인 사람을 눈치채지 못했어」라고 답해주셨어요(웃음). 졸업하고 나면 만날 수 없을까 싶었는데, 연락을 취한다거나 놀러가는 일도 있어서, 일 뿐만이 아닌 관계가 아니라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오오누마 졸업이란 건 보통 슬프잖아요. 하지만, 리사씨는 2일 간 Buddies 분들도 스탭 분들도 우리 멤버들도 전원 행복하게 만들어주시고 졸업하셨어요. 행복한 기분을 많이 받았어요. 1기생 분들이 케야키자카46의 곡을 부르는 파트는 모니터가 뚫어져라 보고 있었는데, 선배님들의 얼굴이 크게 비쳤을 때에는 감정이 전해져서 심금이 울렸어요.
코우사카 정말 멋진 졸업 라이브라서, 리사씨가 오시인 분들도 즐거우셨을 거라고 생각해요. 저는 「모두 리사씨를 보셨으면 좋겠다!」라는 마음을 갖고 퍼포먼스 했어요. 케야키자카46의 곡을 하는 파트는, 1기생 분들이 지금까지 하셨던 것 이상으로 즐거워보이셨어요. 우리들도 사쿠라자카46에서 다양한 곡을 제작해서, 좀 더 많은 분들이 그룹명을 알아주셨으면 해요.
오오조노 1기생에 의한 케야키자카46 곡 퍼포먼스를 보고, 계속 반짝반짝하신 선배님들에게 감동 받았어요. 라이브를 본 분들께서 케야키자카46의 곡이 인상적이었던 건 사실이기 때문에, 이후에는 사쿠라자카46에서 가슴이 찡한 곡을 늘려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엔도 리사씨를 비롯한 일기생 분들은 제게 있어서 동경하는 존재예요. 졸업은 반드시 올 수 밖에 없지만, 역시 쓸쓸함을 느끼게 돼요. 라이브가 끝난 후, 다음 시대를 맡길 수 있는 후배가 되고 싶습니다. 사쿠라자카46에는 앞으로 많은 변화가 일어나겠지만 그래서 승부를 봐야 해요. 케야키자카46와는 다른 강점을 찾아야만하는 시기에 들어 온 게 아닐까 싶어요.
모리야 정말 좋아하는 부분으로, 1기생 분들이 케야키자카46의 노래를 부르는 모습을 보면서 눈물이 나고 말았어요. 모두의 뒷모습이 늠름해서, 정말 정말 멋있었어요. 언젠가는 2기생도 선배님들과 같은 존재감을 발휘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야마사키 그리운 곡도 들을 수 있어서, 다시 퍼포먼스 해주신 게 기뻤어요. 리사씨도 「케야키자카46의 곡을 해야할까」라고 고민하셨겠지만, 거기서 한다는 걸 선택하신 건 팬 분들을 생각하는 마음이 강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세키 리허설에서 『두사람 계절(二人セゾン)』을 보고, 눈물로 눈 앞이 번졌지만, 「본방송에서는 실제로 스테이지를 볼 수 없으니까」라며 눈에 불을 켜고 보았습니다. 앙코르에서는 2기생도 케야키자카46의 곡을 오랜만에 퍼포먼스 했는데, 리사씨가 선택하신 『위태로운 계획(危なっかしい計画)』이나 『바람이 불어와도(風に吹かれても)』는 텐션이 오르는 밝은 곡이였어서 솔직하게 즐길 수 있었어요.
이노우에 쓸쓸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지금까지의 라이브 중에서 최고였다고 말해도 좋을 정도로 즐거웠어요. 「팬 분들 근처에 가고 싶어」라든지, 리사씨의 생각이 반영된 졸업 콘서트여서 「리사씨 대단해!」라고 생각했어요. 1기생 분들께서 케야키자카46의 곡을 불렀던 파트에서는 팬이었을 때의 기분으로 돌아가서 「동경하고 있던 사람들이다!」라며 흥분했어요. 제가 케야키자카46로서 활동했을 때는 발목을 잡지 않기 위해 필사적이었던 점도 있었지만, 「케야키자카46가 좋아」라는 감정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했어요. 사쿠라자카46로서 1년 반 활동하고, 솔직하게 「케야키자카46가 좋아」라고 말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좀처럼 마음을 전하지는 못했지만, 리사씨께 T셔츠에 사인을 받았어요. 졸업 후에 무언가 잘못해서 리사씨로부터 연락이 왔으면 좋겠어요(웃음).
타케모토 1기생분들이 부르는 케야키자카46의 곡은 리허설 때부터 2기생이 들떠있었고, 앙코르의 『위태로운 계획(危なっかしい計画)』에서 모두가 타올을 흔들고 있는 경치가 기뻤어요. 「케야키자카46의 곡이니까」, 「사쿠라자카46의 곡이니까」라고 하는 건 상관하지 않고 「라이브의 일체감이란 이런거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케야키자카46의 곡을 하지 않는다」라는 문제는 멤버들도 각자의 이유가 있고, 타이밍 잡기가 어렵잖아요. 하지만, 리사씨 덕분에 그런 고민을 하지 않고 즐겼어요. 그리고, 사쿠라자카46로서의 자신감이 우리들에게 이어졌으니까, 케야키자카46의 곡을 하나의 연출로 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마츠다 리사씨가 밝은 졸업 라이브를 만들어주셔서, 우리들도 밝은 느낌으로 보내드릴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1기생 분들이 부른 케야키자카46의 곡은 「리사씨가 졸업하시면 8명 밖에 없구나」라며 안타까운 마음이 되었지만, 모두 즐겁게 퍼포먼스 하고 있는 모습을 보니 저도 기뻐졌어요. 모두 고민을 거듭하고 결정하는 거라 응원하지만 역시 「누구든 졸업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하게 돼요. 그래서, 「언젠가 내가 캡틴을 계승하게 될 때가 올지도 몰라」라는 생각은 해본 적 없고, 생각하고 싶지 않아요. 지금은 제게 부족한 것들을 할 수 있게 되고 싶고 그걸 위해서 성장하고 싶어요.
후지요시 리허설부터 그렇게 즐거워하는 멤버의 모습은 처음 보았어요. 리사씨의 인품이 그렇게 만들었다고 할까,리사씨 스스로가 즐거운 리허설로 하려고 생각했기 때문인 것 같아요. 「혼낸다」라고 말하는 게 맞는 건지는 모르지만, 그렇게까지 저를 생각하고 말씀해주신 사람은 처음이었고, 그 뒷편에는 기대감이 있다는 게 기뻤어요. 한명씩 리사씨에게 꽃을 건네는 장면에서는, 감사의 말을 제대로 정리할 수가 없어서 말을 하지 못했어요.
야마사키 지금까지 그룹을 이끌어오신 선배로, 개인적으로도 「언니」 라며 사모한 리사씨가 졸업한다는 걸 듣고 외로움이 가득 찼지만, 그 타이밍에 제가 타이틀곡 센터를 맡게 해주신 건 감사한 일이고 그렇게 때문에 열심히 해야겠다고 긍정적으로 임했습니다. 각자의 길로 나아가는 선배들이 늘어나면서, 응석만 부리고 있을 수는 없고 분발하려고 해요. 여기가 제가 성장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거라고 생각해요.
타무라 리사씨가 하고 싶으신 것들이 가득한 라이브였다고 생각해서, 밝게 졸업할 수 있게 되어서 기뻤어요. 그때까지만 해도 「케야키자카46의 곡은 하지 않는다」라고 하기 보다는, 「사쿠라자카46로서 퍼포먼스를 보여주고 싶다」라는 마음이 강했어요.케야키자카46의 곡에 대해 복잡한 생각을 갖고 있는 게 아니라, 오히려 리스펙트 하고 있지만 사쿠라자카46로서의 프라이드라고 해야할까요, 우리들 나름대로 개명했을 때의 각오였다고 생각해요. 그룹을 지킬 수 있는 건 우리들 밖에 없으니까요. 과거에 여러가지 일이 있어서 그 때마다 마음이 흔들렸지만 순조롭게 진행되었다면 지금처럼 강해질 수 없었다고 생각해요.
14명의 2기생
사쿠라자카46 2기생의 강점은, 무엇일까. 그녀들에게 물어보았다.
엔도 각자 서로 존중할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해요. 「내가, 내가」가 아니라 상대방의 좋은 점도 이상한 점도 서로 인정해요.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서 이해한다는 스탠스로 있으니까, 안심하고 스스로 말할 수 있게 됩니다.
코우사카 각자 사쿠라자카46를 정말 좋아하고, 그룹을 위해서라면 열심히 최선을 다해요. 모두가 정말 열심히 하고 있으니까, 저도 따라잡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우선 『소코사쿠』에서 더 앞으로 드러내고 싶어요. 말을 건네는 게 서툴러서, 항상 눈을 돌려버리니까 제가 손을 들고 발언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모리야 각자가 오리지널리티를 갖고 있는 점이 2기생의 강점이라, 각자의 매력을 더욱 방출할 수 있다면 사쿠라자카46은 더 큰 그룹이 될거라고 생각해요.
오오누마 각자 개성적이지만, 결코 제각각인 게 아니라 서로 존중하는 점이 멋지다고 생각해요. 저의 『누마송』도 완전 별거 아닌데 모두가 많이 들어주고, 텐쨩이 엄청 칭찬해줘요. 개성적인 면을 부수지 않고 있는 게 정말 따뜻하다고 느껴져요. 저도 (인위적으로) 캐릭터를 만들지 않고, 바보같은 짓을 해도 도와줘요. 앞으로도 개성을 발휘하면서 활동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오오조노 각자 혼자 있는 걸 자주 보지만, 우울해하는 게 아니라 자기자신과 싸우면서 앞을 향하고 있어요. 마이너스한 기분을 오래 끌고가지 않고 모두가 모였을 때는 웃는 얼굴로 있어요. 그런 모두가 엄청 좋아서, 13명에 대해 각각 좋아하는 점을 바로 꼽을 수 있어요. 지금까지 저와 비슷한 사람을 만난 적이 없는데 2기생은 한사람씩 「나와 이 점이 닮았네」라고 생각한 적이 있어요.
이노우에 센터 경험자가 4명 있고, 마츠다가 부캡틴으로 있어서 외부 방송에서 활약할 수 있는 멤버도 많고, 그룹을 이끄는 멤버가 많이 있는 것이 강점이라고 생각해요. 저도 6월부터 오제키 (리카)씨를 대신하여 『사쿠라자카46 여기는 유라쿠쵸 별하늘 방송국』의 메인 퍼스널리티를 맡게 되었습니다. 이야기하는 건 좋아하지만, 지금까지의 편안한 분위기를 제가 망치는 건 아닐지 불안함도 있어요(웃음). 칸사이 사투리를 쓰면서 계속 말하고 떠드는 것도 저의 장점이라고 받아들여주시고 들어주시면 감사합니다.
마츠다 누군가 한 사람에게 주목하면 눈을 뗄 수 없게 되는 개성이 있는 멋진 아이들이 가득하고, 사이가 좋기 때문에 모였을 때 포근한 분위기가 나오는 것도 강점이라고 생각해요. 2기생은 그다지 「친하다는 어필」을 하지 않아 왔지만, 「어필할 필요가 없다」라고 생각할 수 있을 정도로, 본 모습이 사이가 좋아요. 다만 제게 있어서 2기생은 「친구」가 아니라 「동료」라는 인식이라, 앞으로도 14명이서 절차탁마하면서 성장하고 싶습니다.
세키 키라쨩 같이 특별한 아이도 있지만(웃음), 좋은 의미로 다들 평범한 아이라고 생각해요. 스테이지에 서면 반짝반짝 빛나지만 무대에 내려가면 친해지기 쉬워요. 그런 점이 2기생의 강점일지도 몰라요.
모리타 2기생은 주위를 둘러볼 수 있는 아이가 많아요. 「그 아이가 우울해 하지 않나」라고 눈치채면 근처에서 지탱하려고 해요. 그런 점이 2기생의 강점인 것 같아요. 제게 있어서 2기생은 「사랑스럽다」라는 말이 가장 잘 어울리는 존재입니다. 같은 스테이지에 서 있는 동료이지만, 일 이외에도 사이가 좋기 때문에 「동료」라는 말 이상으로 깊은 관계라고 생각해요.
타케모토 지금의 2기생은 강해졌어요. 가입 초기에는 무슨 일이 생기면 구석에 다같이 모여서 우울해하고, 서로 위로하면서 마음을 보호하려고 했어요. 이제는 모두 각자 스스로의 마음을 보호할 수 있게 됐어요. 그리고, 사쿠라자카46가 어떻게 하면 좋아질까, 그러기 위해서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하는 걸 모두가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케야키자카46 시절에는 스스로의 일에 필사적이라 그룹에 대해 생각할 여유가 없었어요. 2기생 14명 한 명 한명이 확실한 마음의 기둥을 갖게 되어서, 사쿠라자카46의 토대가 되었다고 생각해요.
이 1년 반, 멤버들은 「사쿠라자카46 다움」을 찾기 위해 싸워왔는데, 그 토대는 드디어 굳어졌다.
야마사키 1st 싱글은 센터가 3명 있고, 그 한 곡 한 곡의 개성이 강해서 이 그룹은 어떤 방향으로 해야할까 고민한 적도 있어요. 하지만, 그런 특수한 형태가 사쿠라자카46의 컬러로 굳어지고 있는게 아닐까 싶어요. 여러 방향에서 볼 수 있는 그룹으로 계속 있고싶고, 저 자신도 어떤 장소에 있든 빛나고 싶습니다. 8월 3일에 발매되는 1st 앨범 『As you know?』에서 사쿠라자카46의 하나의 형태를 제시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타케모토 1기생 분들 덕분에, 2기생은 쭉죽 성장하고 있습니다. 1기생 분들은 2기생에 대해서 항상 「좋을 대로 해도 괜찮다」라는 스탠스로 있어 주세요. 2기생에 대해 절대 부정하지 않고 전부 있는 그대로 받아주세요. 사쿠라자카46가 되고, 우리들이 은혜로운 환경에 있다는 걸 실감했어요. 1기생 분들에 대한 감사함은 절대로 잊어선 안된다고 생각해요.
타무라 2기생과 신2기생 뿐만 아니라, 이 1년 반으로 1기생 분들과의 거리도 가까워 진 것 같아요. 좋은 의미로, 선배님들이 후배를 수평적으로 봐주시고 계세요. 1기생 분들의 스탠스를 존경합니다. 지금, 대기실 자리도 2기생 중에 1기생이 있거나 1기생만 있는 자리에 2기생이 있는 풍경이 일상적입니다. 2기생과 신2기생이라기 보다는, 1기생과 2기생이 융합되어 그룹이 하나가 되었다고 생각해요.
현재, 사카미치 그룹(노기자카46, 사쿠라자카46, 케야키자카46)에서 기수곡이 없는 건 사쿠라자카46의 2기생 뿐이다. 케야키자카46 후기에 2기생 곡을 요구했듯, 14명의 2기생 곡을 원하지 않을까.
오오조는 저는 2기생 곡을 원해요. 노기자카46 분들도 히나타자카46 분들도 기수곡이 있잖아요. 성장한 우리들이 부를 수 있는 어른스러운 곡이 좋을 것 같다고 망상해요.
엔도 신2기생으로 가입하자마자 코로나 사태가 되었기 때문에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일이 많았어요. 좀 더 14명이 하나가 되었으면 하고, 그 중 하나가 2기생 곡이면 좋을 것 같아요.
코우사카 2기생 만의 곡을 갖고 싶다고 생각하지만, 그 이상으로 2기생만으로 로케를 가고 싶어요. 로케를 통해서 사이를 더 깊게 만들고 싶어요. 모두와 더 친해지고 싶어요.
이노우에 2기생 곡을 받을 수 있다면, 그건 기뻐요. 하지만 「갖고 싶어, 갖고 싶어」라고 해도 받을 수 있는 게 아니라 시간의 흐름에 맡길 수 밖에 없어요. 2기생 곡을 받을 때가 되면, 그게 베스트 타이밍이라고 생각해요.
타무라 가입 초기부터 1기생, 2기생으로 나뉘는 경우가 적었지만 우리들은 2기생사랑(기수사랑)을 갖고 있어서 「9명의 곡을 갖고 싶어」라고 생각한 적도 있었어요. 당시 2기생은 오리지널 포지션이 없었기 때문에, 2기생 곡을 원했었어요.
타케모토 「2기생 9명의 곡을 원한다」고, 모두 스탭 분들과 직접 담판을 지은 적도 있어요. 하지만, 리코가 빠진 순간부터 말하지 않게 됐어요. 9명의 2기생 곡인게 의미있다고 생각했으니까요.
세키 그 타이밍에 2기생 곡을 받지 못했던 것은, 우리들이 요구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2기생 곡을 받을 수 있는 타이밍이 오면 열심히 하겠습니다.
야마사키 케야키자카46 때는 「2기생 9명으로 곡을 갖고싶다」고 모두와 이야기 했던 걸 기억하고 있어요. 만약 있었다면 어떤 곡이 되었을까요. 지금은 그거보단 14명이서 놀고 싶어요. 모두와 큰 공원에 가서, 카린은 계속 벤치에 앉아있고 키라쨩은 계속 뛰어다니고, 멤버마다 노는 법이 다른 게 재미있으니까요.
마츠다 2기생만의 활동이라는 게 없었기 때문에, 휴일을 14명이서 보내는 모습을 촬영하신다면 각자 새로운 일면을 볼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평소 태클걸고 받아치는 걸 하고 있어서, 재미있는 영상이 될거라고 생각해요.
사쿠라자카46로서
현재, 사쿠라자카46는 새로운 멤버를 모집중으로, 연내에는 2기생에게 있어 첫 후배가 들어올 예정이다. 그녀들은 어떤 생각으로 「아직 보지 못한 후배」를 기다리고 있을까.
모리야 제가 선배가 된다니, 지금은 이상한 기분이에요. 후배가 들어오면 의식이나 책임감이 달라질 거라고 생각해요.
오오조노 지나치게 간섭하지 않는 선배가 되고 싶어요. 그래도, 이 때다 싶으면 가득 웃게 만들고 싶어요(웃음).
코우사카 저보다 굉장한 아이들이 들어올 거라 초초하기도 하지만, 상냥한 선배가 되고 싶다는 마음이에요. 무서운 선배라고 생각되지 않았으면 해요. 후배가 들어올 때 까지 몇개월 간, 제가 조금이라도 성장했으면 해요.
마스모토 새로운 멤버 모집을 알게되었을 때부터, 후배와 함께 코코이치의 카레를 먹으러 가는 걸 상상했어요. 선배가 해주신 걸 「후배가 오면 이렇게 해줘야지」라며 축적하고 있어요. 예를 들면, 스가이씨가 상냥한 말씀을 해주시면 「후배가 생기면 이런 말을 해주자」라고요.
오오누마 이번 오디션의 캐치프레이션이 「피지 않는 사람은, 없다」이지만, 저 자신이 아직 꽃피지 않았다고 해야할까, 그런 상태에서는 후배쨩들에게 선배의 등을 보여줄 수 없어요. 하지만 사쿠라자카46를 좋아하고 들어와 주는 게 정말 기쁘기 때문에 후배에게는 죽을정도로 성냥하게 대하고 싶고, 만약 곤란한 일이 있으면 전력으로 지지하고 싶어요.
엔도 더욱 저에 대해 알아주었으면 하는 단계라 솔직히, 초초하기도 해요. 저를 선배로 봐줄 수 있을까요. 지금부터 들어오는 아이에게 「동경하는 존재」 권내에는 들어가 있지 않을 것 같아요. 그렇기 때문에 열심히 해야만 하고 신2기생을 받아줬을 때 처럼 후배를 서포트 하고 싶어요.
세키 실제로 선배로서 행동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장녀라 연하의 아이를 보살피는 게 특기라고 생각해요. 어떤 아이가 들어올지 지금부터 기대됩니다.
이노우에 응모자격이 20살까지잖아요. 완전 저보다 연하인 아이가 들어온다니 마음이 술렁거려요. 중학생 때는 테니스 부의 캡틴이었지만, 선배다운 건 하지 않아서 친구같은 느낌으로 대했어요. 그래서, 후배가 생겨도 「이노우에쨩」이라고 불리는 게 더 기뻐요.
마츠다 등으로 말하며, 후배가 「이렇게 되고 싶다」라고 생각될 수 있는 인간이 되고 싶어요. 우선은 따라하는 것부터 시작하잖아요. 지금부터 따라해도 부끄럽지 않은 행동을 하고자 주의하려고 해요.
타케모토 후배가 들어오는 건 기대되지만, 카린과 「우리들, 언니가 될 수 있을까?」하고 이야기 했어요. 저는 그룹 전체에서 아래에서 3번째 정도의 나이라, 연상밖에 없는 환경에서 지내와서 제가 「선배」를 할 자신이 없어요(웃음). 「사쿠라자카46가 정말 좋아요」하는 아이가 들어왔으면 좋겠어요.
후지요시 2기생은 후배스러운 느낌이 강한 멤버가 많아서, 후배가 생기는 것에 대해 이상한 감정이 있어요. 새로운 멤버가 사쿠라자카46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돼요.
타무라 말을 걸고 싶어진다면 슥하고 움직일 수 있는 멋진 선배는 될 수 없을지도 모르지만, 후배에게 상담하기 쉬운 선배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하려고 해요.
야마사키 두근두근해요(웃음). 중학교 1학년 때 그룹에 들어갔고, 부활에서 선배로서 후배를 가르친 경험도 없어서 괜찮으려나요. 2기생 최연소니까 후배가 무엇이든지 말할 수 있는 선배가 되고 싶어요.
모리타 아직 후배가 들어오는 게 실감이 전혀 나지 않아요(웃음). 저보다 「동기인 모두가 어떤 선배가 될까」하는 기대가 돼요. 「마츠다는 엄마처럼 상냥하겠지」라든지 「텐쨩은 친근하게 대할 거 같고, 카린쨩은 어떻게 대할까」라든지,「유이쨩은 낯을 가릴거 같아」같은. 그런 상상만 해도 재미있잖아요. 저는 엄청 낯을 가리기 때문에, 엄청 친해지거나 아니거나 둘 중 하나라고 생각해요(웃음)
사쿠라자카46 신 멤버 오디션 응모가 시작되고, 2기생 14명은 자신이 사카미치 합동 오디션을 받았을 때를 추억했다. 그 시절 품었던 생각은, 지금도 그대로일까 아니면 업데이트 되었을까. 그녀들에게 있어 공통점은 「사쿠라자카46가 좋다」라는 곧은 마음이었다.
모리타 제 안에서 「초심을 잊지 않아」라는 마음이 항상 있기 때문에, 이번 오디션을 알게 되었을 때 4년 전의 저를 떠올렸어요. 「이번 여름, 당신의 인생이 바뀝니다」라는 캐치프레이즈에 끌려 응모했는데, 실제로 제 인생은 좋은 방향으로 바뀌었어요.
엔도 제가 오디션을 보았을 때의 사진을 다시 봤어요. 그 시절에는 제 안에 갇혀서, 다른 사람에게 이해받는 걸 포기하고 있었어요. 비슷한 처지에서 자기자신을 바꾼 노기자카46의 이코마씨처럼 빛나고 싶어서 오디션을 보았고, 사쿠라자카46의 활동을 통해서 어둠에서 구해질 수 있었어요. 좀 더 앞으로 드러내면서 그룹을 이끌어나갈 수 있는 존재가 되고 싶어요.
코우사카 4년 전에는, 라이브 퍼포먼스로 팬 분들을 즐겁게 만들 수 있는 아이돌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이 목표는 달성했기 때문에, 지금의 목표는 좀 더 저를 드러내는 것. 일단은 긴장하는 점을 고치고 싶어요.
오오누마 연수생으로서 활동을 시작하고 3년 가까이 지나, 제가 그린 이상적인 아이돌 모습에 좀 더 가까워진 것 같아요. 특히 2번째 『BACKS LIVE!!』에서 선보인 『유탄』에서 「용기를 받았다」는 팬 분들이 많이 계셔서 그게 엄청 기뻤어요. 저는 케야키자카46의 곡이나 가사에 구원받았기 때문에 아직 미숙하지만 제 퍼포먼스로 팬 분들께 메세지를 전하고 싶습니다.
마스모토 제가 오디션을 보았을 때, 2차 심사에서 갈등을 했었어요. 저를 만들어서 「진지하게 할까」, 「목소리를 높일까」 망설였지만, 있는 그대로의 저를 관철시키기로 했어요. 만약 저를 (인위적으로) 만들었다면, 지금쯤 괴로웠을지도 몰라요. 자기답게 사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다만, 아직도 「나는 아직 신2기생이니까」라고 변명을 한 적이 있기 때문에 응석부리지 말고 「나는 2기생」이라고 말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싶어요. 앞으로의 목표는 2기생이 되는 것 입니다.
오오조노 오디션 때는, 모든 심사에서 울고, 모든 심사에서 길을 잃어서 지각했어요(웃음). 회장 근처의 역에서 전화했더니 상냥하게 알려주시면서 「침착하게 와주세요」라고 들었어요. 그 때는 「아이돌 외에는 하고 싶은 게 없다」라는 마음이었지만, 지금은 「아이돌은 여러가지를 할 수 있으니까 여기에 있는다」라는 마음으로 바뀌었어요. 앞으로 노래나 댄스 뿐만이 아니라, 퀴즈 방송에도 드라마에도 도전하고 싶어요.
모리야 원래 사카미치 그룹을 좋아했는데, 「아이돌이 되자」라는 건 생각해 보지 않았어요. 엄마와 오빠가 오디션 기사를 발견하고 연령대가 「이제 다음은 없으려나」싶어서 가벼운 마음으로 응모했어요. 그 시기의 저는 항상 소극적이고, 욕심이 없어서, 「나는 할 수 없어」라며 금새 포기했어요. 하지만, 사쿠라자카46에서 활동하고 나서는 「일단 해볼까」하고 긍정적으로 생각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아이돌이나 버라이어티 뿐만이 아니라, 연기나 패션에도 도전하고 싶어요.
세키 좋아하는 그룹에 들어가서, 이상과 현실의 갭에 괴롭기도 했어요. 하지만, 좋아하는 마음을 소중히 여기면서 극복해 왔습니다. 그래서 강해졌어요. 지금은 사쿠라자카46에 대해 많은 분들이 알아주셨으면 하는 마음이 강합니다. 객관적으로 보아도 멋진 그룹이고, 귀여운 아이밖에 없으니까요(웃음). 「케야키자카46하면 이것」이라는 이미지가 있었듯, 「사쿠라자카46하면 이것」이라는 이미지가 생길 수 있도록 열심히 하겠습니다.
마츠다 오디션을 볼 때는, 아이돌을 목표로 하지는 않았어요. 그래서 「이상적인 아이돌상」이 없이 그저 활동했어요. 그것도 나쁘지는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무리하지 않고 자기다움을 소중히 하면서, 여기까지 계속 할 수 있었으니까요. 만약 스스로를 속였다면, 금방 들켜버렸을 거예요.
이노우에 케야키자카46에 들어가는 건 꿈도 아니고, 들어갈 리가 없다고 생각했어요. 그룹 활동하다 보면 라이브가 끝날 때 마다 「더 이렇게 되고 싶다」같이 가까운 곳에 있는 꿈이 생겨요. 사쿠라자카46가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그룹이 될 수 있었으면 하는 큰 꿈도 있어요. 오히려 그룹에 들어가서, 계속 꿈 속에 있는 것 같은 감각도 있어요. 이 꿈이 이어진 채로, 할머니가 되어 죽을 때 「어라?」하고 깨달을지도 몰라요.
타케모토 「아이돌이 되고싶어라고 생각하며 오디션을 본 게 아니라, 「케야키자카46가 좋아요」라는 마음 하나였어요. 소속이 결정되기 전 까지, 매니저 분들과 면담이 있을 때 마다 「저는 케야키자카46가 좋아요」만 말했어요(웃음). 그래서 셀렉션의 결과, 「당신은 케야키자카46의 2기생입니다」라는 말을 들은 순간에 꿈에서 깨어난 것 같은 감각이 들었어요. 활동을 하다보면 「아이돌은 정말 최고구나」라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지금은 「사쿠라자카46의 타케모토 유이」만 생각하고 있어요. 앞으로도 사쿠라자카46로 열심히하고, 사쿠라자카46의 모두와 위로 올라가고 싶습니다.
야마사키 「이런 아이돌이 되고 싶다」는 생각하지 않고, 오디션은 「케야키자카46를 좋아하니까」받았습니다. 좋아하기 때문에 고민도 많았지만, 좋아하기 때문에 계속할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케야키자카46에 들어갈 수 있어서 다행이에요. 그래서, 이번 오디션도 「사쿠라자카46가 좋아」라는 마음이 있으면 응모해도 괜찮지 않을까 싶어요.
후지요시 고향에 있을 때 진로에 대해 묻는 게 싫어서 도쿄에 오고 싶었어요. 그렇게 생각한 제가 나쁜거지만(웃음). 오디션을 받고 합격하면, 제가 변하는 게 무서웠어요. 하지만 발을 내딛었을 때 아이돌로서 활동하는 즐거움을 알게 되었어요. 『여우 같은 게 뭐가 나빠?(あざとくて何なにが 悪わるいの?)』의 드라마 촬영도, MV에서의 연기와는 전혀 다른 어려움이 있었는데, 그게 재밌었어요. 연기를 하고 싶다는 호기심이 강해졌어요.
타무라 저는 사카미치 합동 오디션의 세미나에서 시드권을 받은 걸 계기로, 「그저 아이돌이 좋아」라는 마음만 가진 채 그룹에 들어갔어요. 그 시절에 꿈꾸었던 스테이지에 설 수 있게 되었지만 「아이돌이 좋아」라는 마음은 변하지 않았어요. 지금은 개인적인 꿈보다는 사쿠라자카46을 더 큰 그룹으로 만들고 싶은 마음이 강해서, 돔 투어나 해외공연.... 사쿠라자카46로서 이루고 싶은 게 많이 있어요.
Information
사쿠라자카46 1st 앨범 『As you know?』 8월 3일(수) 발매 결정!
「W-KEYAKI FES.2022」 7월 21일(목) ~ 7월 24일(일) (사쿠라자카46는 22일(금), 24일(일) 등장)에 후지큐 하이랜드 코니퍼 포레스트에서 개최!
7월 4일(월) 17시까지 「사쿠라자카46 신 멤버 오디션」 개최중!
자세한 건 사쿠라자카46 공식 HP&SNS를 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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